나는 내가 또래보다 세상을 조금 먼저 알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나는 어릴 적부터 또래와는 다르게 살아왔던 것 같다. 남들은 장래희망을 생각할 때 나는 삶의 이유에 대해 생각을 했고, 어린 시절 막연한 꿈을 정할 때, 나는 비로소 삶의 이유가 존재하지 않음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삶은 옷 한 벌 못 걸치고 태어나 쌀알 한 톨 못 가지고 가는 것이고, ‘나’라는 사람 또한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알았다. 이런 이유 탓인지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마땅할 꿈이랄 것이 없었고, ‘애늙은이’라는 말이 나의 별명이 되어 있었다. 이것도 조금은 억울한 부분이 있다. 나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른스러운 면모가 보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세상을 먼저 아는 일이 썩 좋지만은 않은 부분들이 있는데, 아빠 친구들의 장래희망이 뭐냐는 질문에 대충 그럴싸한 장래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거나,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일들이다. 어릴 적 응석 부리듯이 솔직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근데 또 이러한 부분은 용돈벌이에 도움이 된다. 삼촌들의 기분을 좋게 해 주면서 지갑을 털어먹고는 했다.
무엇보다도 신기했던 것은 자신들의 고민들을 들고 내게 찾아오는 친구들이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장 어렵고 답이 없는 질문들을 내게 해답을 구하러 찾아온다. 그러면 나는 그 친구의 말을 천천히 들어주기만 한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이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했지만 내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는 다시 갈길을 떠난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은 진짜로 어떠한 일이 고민되기보다는 그저 확인받고 싶은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지금에 와서야 이야기하는 것은 나는 당장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을 건지조차도 잘 정하지 못하는데, 내게 자신의 인생 고민을 결정해 보라는 것은 너무나도 오만한 선택이었다. 또래보다 책을 조금 더 많이 읽고, 생각을 할 시간이 조금 많은 것뿐인 10대였으니까.
사실, 지금 글로 쓰는 이러한 것들을 내가 조금 더 빨리 어른스러워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중2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가끔 나 자신을 의심한다. 아무렴 뭐 어떤가. 이제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고, 어른이 될 차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