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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는 시간.

알람이 울린다. 하루가 또 시작된다. 아침마다 물을 마실까 믹스커피를 마실까 고민하다가 결국 커피를 마신다. 습관적으로 커피를 타고 한 모금 마시면서, ‘차라리 물을 마셨으면 텁텁함은 덜했을 텐데’ 하며 후회를 한다. 이런 선택을 반복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만 오늘은 이런 모습의 나를 다그치기보다는, 따뜻한 커피 한잔이 주는 위로에 감사하며 나를 더 이해해보려 한다.


샤워를 하며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자 불안감이 올라온다. 속이 상하지만, 화를 낸다고 달라질 것은 없기에 그대로 머리를 감는다. 예전 같았으면 불안을 더 키우며 한참을 걱정했을 텐데, 이제는 그런 불안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꾸준히 관리하고, 나를 돌보는 것뿐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샴푸 거품을 씻어낸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거울을 보는 순간, 잠시 잊고 있던 불안이 다시 올라온다.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그냥 스치는 것처럼 지나가지만, 결국 묵직한 감정으로 스며들곤 한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나는 그 순간의 나일뿐, 온전한 내 모습은 아니다. 불안을 느낄 때마다 나를 몰아세우는 대신, ‘오늘도 이렇게 나를 바라볼 용기가 있구나’ 하고 인정해 주기로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의 우울은 억제된 감정에서 비롯된 것 같다. 참는 것이 익숙해진 탓에, 내 안의 감정을 스스로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동안 왜 나를 숨기고 살아왔을까?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아니면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어릴 적부터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웃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그래야 더 사랑받을 거라고 믿었지만, 그 과정에서 내 진짜 감정은 점점 눌려 갔다.


커가면서 나는 내 목소리를 내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묵을 선택했지만, 그 침묵 속에서 점점 나를 잃어갔고 스스로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남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기뻐하는 것으로 내 존재를 확인하려 했다. 타인의 감정에 의지하던 나는 늘 누군가에게 기대려 했고, 그런 관계의 반복은 결국 더 깊은 외로움과 불안을 남겼다.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우울이나 불안은 단순히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래서 내 감정을 이해하고 돌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어쩌면 나를 위한 신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제는 내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그 감정이 내게 전하려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려고 한다.


피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이 스며들 때마다 이를 자각하고 나를 더 따뜻하게 바라본다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결국 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도 그렇게, 나를 이해하는 길을 걸어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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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베네치아의 한 골목에서 찍은 사진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급히 걷던 중이었지만, 이 가면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 가면들은 강렬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빼곡히 진열된 모습은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표정도 모두 달랐다. 익살스러운 얼굴이 있는가 하면, 불안하거나 슬퍼 보이는 얼굴도 있었다.

특히 머리에 연필이 꽂힌 가면이나 찡그린 얼굴들은 감정의 혼란과 복잡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반면, 한쪽 구석의 조용한 흰 가면들은 감정을 숨기려는 듯 보였다.

그 모습들은 마치 ‘드러냄’과 ‘숨김’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베네치아와 가면은 깊은 관련이 있다. 베네치아는 오랜 전통을 가진 가면 축제(카니발레 디 베네치아)로 유명한데, 이 축제에서는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신분과 감정을 숨긴 채 자유롭게 즐기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베네치아의 가면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 계급을 초월하거나 자신의 정체를 감추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찾아보았다.


1. 베네치아 가면은 원래 익명성을 위한 도구였다.
지금은 카니발(카니발레 디 베네치아)에서 많이 쓰이지만, 17~18세기 베네치아에서는 가면이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는데, 귀족들은 신분을 숨기고 자유롭게 행동하기 위해 가면을 썼고, 심지어 카지노나 사적인 만남에서도 사용했다. 덕분에 신분 차이를 초월한 사랑, 음모,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루어지곤 했다.


2. 가면이 너무 위험해져서 금지된 적도 있다.

가면을 쓰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18세기에는 특정 시기(특히 카니발 기간)를 제외하고 가면 착용이 금지되었다. 특히 수도원 근처에서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고, 이를 어기면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3. ‘바우타(Bauta)’와 ‘모레타(Moretta)’
바우타(Bauta)는 가장 유명한 가면 중 하나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면서도 입을 가리지 않아 쉽게 말할 수 있는 형태다. 남성들이 정치 모임이나 비밀 회합에서 신분을 숨기기 위해 자주 사용했다.
모레타(Moretta)는 검은색 벨벳 가면으로, 여성들이 많이 착용했다. 특이한 점은 입을 막는 방식인데, 가면 안쪽에 작은 단추가 있어서 이를 물고 있어야 했다. 즉, 모레타를 쓰면 말을 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더욱 신비로운 매력을 준다고 여겨졌다.


4. 카사노바와 가면 – 유혹과 모험의 상징
전설적인 바람둥이 자코모 카사노바도 베네치아의 가면과 관련이 깊다. 그는 바우타 가면을 쓰고 귀족 부인들과 은밀한 만남을 가졌고, 신분을 숨긴 채 베네치아의 밤문화를 즐겼다고 한다. 또한, 그는 한때 감옥에 갇혔지만, 가면을 활용해 변장한 뒤 극적으로 탈출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5. 베네치아 가면 장인들은 지금도 전통 방식을 유지한다.

베네치아의 가면 제작자들은 여전히 종이와 석고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가면을 만든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장인들이 손으로 직접 색칠하고 장식하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독창적인 예술 작품이다.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 속 가면들도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와 의미를 가진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내가 이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베네치아의 가면 가게를 담았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을 어떻게 마주하고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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