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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신 Feb 08. 2022

어묵공장 알바 썰 푼다

나의 또 다른 아르바이트 이야기. 

이번에는 어묵공장에서 일을 했던 경험이다.


섹스앤더시티로 영어를 공부한 나는 외국에서 살고 싶은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나는 캐리처럼 살고 싶었다. 외국에서 자유롭고 즐겁게 살아 보는 것이 내 로망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회생활을 하다가 도중에 가기는 힘들 것 같아서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 떠나기로 했다. 딱히 모아둔 돈도 없고 학업에 뜻이 더 있는 것이 아니라서 미국을 가기는 힘들기에 누구나 다 받아준다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다. 


코스모스 졸업을 해서 1학기가 끝나고 한 3주 뒤에 호주를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폭풍 검색 끝에 인천-상해-시드니행 비행기 편도 30만 원에 티켓을 거머쥐었다. 

3주 동안 시간이 뜨는데 날도 덥고 집에서 할 건 없었다. 이래저래 모든 돈 딱 100만 원 들고 가는데 그걸로는 초기 정착금이 아주 빠듯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푼이라도 더 들고 가야 좋은데 시간이 짧아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 내 눈에 띈 단 기 알 바! 


옆 동네에 공단이 많아서 공장 단기 아르바이트 구인 글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중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하는 대기업 어묵공장 포장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보통 그런 대기업은 바로 구인을 하지 않고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서 사람을 구한다. 아웃소싱 업체에서 바로 면접을 보자고 해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업체에서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었고, 나는 언제 출국을 하기 때문에 2주만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2주만 일을 해도 그 일당은 자신들이 책임지고 받아주지만 공장에다가는 6개월 이상 일을 할 예정이라고 말을 맞추어달라고 했다. 공장에서도 형식적인 면접을 본다고 했다.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공장에 가서 면접을 봤는데 뭔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부장님과 간단한 면접만 보면 된다고 했는데 그분이 내 이력을 보더니 갑자기 공장장실에 데려가고 그곳에서 공장의 대빵과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나는 어묵 포장하는데 무슨 공장장 면접을 보나.. 오버 아닌가.. 싶었는데 그분의 질문이 포장 아르바이트 치고는 꽤 난도가 높았다.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왜 취직은 안 하고 어묵 포장 일을 하려고 하나? 

그전에 아르바이트나 마케팅 쪽으로 인턴 경험이 있는데 가고 싶은 분야가 어디인가? 

생산관리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보라?


등등...


면접을 다 끝내고 본론을 말하셨다.

지금 그 공장에 관리직 사원 한 명 티오가 나서 채용을 해야 하는데 내가 마음에 드니 포장 아르바이트를 하지 말고 공장에 관리 사무직으로 정식으로 입사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저는 2주 뒤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요?이라는 소리는 차마 하지 못해서 '저는 생산관리가 아니라 마케팅 쪽으로 업무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둘러서 거절을 했다. 그런데 '여기 공장에서 몇 년 경력을 채우면 공장장 추천으로 본사에 들어갈 수 있다. 이미 그렇게 본사 들어간 직원들도 있다. 원한다면 그때 본사 마케팅 쪽으로 추천을 해주겠다.'라고 하셨다.


솔직히 1초 흔들렸다. 대기업 루트를 그렇게 쉽게 탈 수 있다고? 뭐 사실 본사 안 들어간다고 해도 그곳 공장에서 생산관리만 해도 개꿀인데...?

하지만 내 안의 캐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 멀리 바다 건너 오세아니아 대륙에서 캐리가 된 내가 기다리고 있는데...!


'제가 공장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도 없고 일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모르는데 어떻게 관리직을 바로 맡을 수 있겠어요. 원래 하려던 대로 포장을 해서 바닥부터 시스템을 알아가겠습니다.' 


그때 그분은 아니 이렇게 똑 부러진 청년이 있다고...! 하는 감탄의 눈으로 아주 흡족해하며 맞는 소리지. 일 단 한 달 해보라고! 하고 만족하시며 악수를 청하셨다. 


바로 나와 아웃소싱 업체에 전화해서 지금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게 되었다고 말을 하자 거기서도 조금 난감한 것 같았다. 일단 포장하실 거냐고 해서 2주 채울 수는 있는데 그 이후는 나는 안된다고 했고, 그것도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일단 포장 라인에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공장에서 생산된 어묵은 안심하고 구매를 한다. 만약 그 어묵에서 벌레나 이물질이 나왔다고 하면 그것은 높은 확률로 소비자의 과실일 것이다. 왜냐하면 방진복을 입고 머리카락 한올도 용납하지 않으며 어묵을 만날 때까지 엄청나게 많은 과정의 소독을 하고 바람을 맞아서 모든 먼지를 날려버린다. 사람도 들어가기가 이렇게 힘든데 벌레가 아무리 들어가려고 용을 써도 들어갈 수가 없는 시스템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지도 않던 시절에도 주기적으로 공기 중에는 소독으로 인해 소주 냄새가 가득했다. 


어떤 상품의 용량이 400g이라면 400g보다 꼭 더 넣어야 한다고 했다. 넘는 건 괜찮은데 모자라면 누군가가 그걸로 컴플레인을 걸 수 있고 그러면 큰일이 난다고 했다. 1g이 모자라다고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억울할 것 같았다. 참으로 섬세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갓 만들어낸 어묵이 얼마나 맛있을까 싶었는데 곳곳에 있는 CCTV가 감시하고 있어서 절대 마스크 내리고 손으로 집어서 내 입에 넣으면 안 된다고 했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갈 수도 있고 포장라인 안이 위생 때문에 엄청나게 낮은 온도여서 한여름에도 몸에 한기가 돌았다. 밖에 잠깐씩 나가서 몸을 녹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방진복을 다시 입는 것 자체가 귀찮아서 중간 쉬는 방에서 살기 위해 틈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했다. 단순 동작뿐만 아니라 평소 안 쓰던 짐을 나르며 근육을 자극하니 아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죽음뿐이겠다는 본능이 날 스트레칭을 하게 만들었다.


공장의 점심시간엔 구내식당을 이용하면 되었는데 밥이 진짜 맛이 없었고 의외로 어묵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아쉽.


2주 채우고 마지막 날 내가 있던 생산라인 책임자분께 저 내일부터 안 나온다고 했다. 팔짝 놀라실 줄 알았는데 그분은 늘 있는 일인 양 대수롭지 않게 알겠다며 옷만 제대로 반납하고 가라고 하셨다. 


내가 하도 이 기업에서 생산되는 어묵 깨끗하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더니 지인들이 마트에서 가서 종종 물어본다. 그래서 거기가 어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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