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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섬 Jan 09. 2019

간질간질

이책이글 14회_이글_위선

그는 발목을 두 번 접은 슬림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바지 아래에는 남색과 붉은색 마름모가 겹쳐진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청바지에도, 회색 운동화에도 잘 어울렸다.


바람이 차가웠던가 아니면 따뜻했던가. 

돌아서 한참을 가버린 그를 쫓아가며

평소에 그가 좋아하던 초콜릿을 꺼내려고 가방을 뒤지다가

가방 안의 내용물을 길바닥에 다 쏟아버렸던 그 날.

바닥에 굴러다니는 온갖 물건과 마음을 줍기 위해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그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초콜릿을 받아 들던 그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던 내 얼굴.

“잘 지내.” 라고 말했었다.

떠나는 그에게, 남겨진 내가. 

바람은 차가웠던 것 같다.

팔의 솜털이 곤두서 있었다. 

하지 못한 말이 남아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작아지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기 전에

어디에든 걸려 넘어져 버리기를 바라며 눈을 떼지 못했다.


내내 후회했다.

행복하지 말라고, 웃으면서 얘기해줄걸.


끝까지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버림받더라도 버림받는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보일지만 생각했다.


마음과 행동이 너무 달라서

무엇이 진짜였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어쨌든 후회한다.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울면서 소리라도 지를 걸 그랬다.

지금도 발목을 두 번 접은 슬림한 청바지를 입은 남자를 보면

목구멍이 간질거린다.






[이책이글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9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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