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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섬 Jun 09. 2019

좋은 아침

이책이글 37회_이글_시작_160628

헤어지자는 말은 없었지만, 헤어지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와 헤어진다는 사실이 슬프지 않아서 애꿎은 옆머리만 계속 귀 뒤로 넘기고 있었다.


“잘 지내. 건강하고.”

“그래. 오빠도 잘 지내.”


겨울을 다섯 번이나 넘긴 우리의 연애는 특별한 사건도 없이 서서히 말라 결국 죽어버렸다. 처음 시작할 때 너무 빛나던 우리가, 모두에게 함께 사랑받던 우리가 이렇게 마주 앉아있다는 사실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나 보다. 어색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 자기랑 있는 게 어색하냐면서 연애 초반에 매번 그가 지적하던, 싫어하는 버릇.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손가락을 보고 있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마음에도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잘 해준 것도 없는데 뭘.”

그가 무심함을 감추며 말했다. 그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간을 함께했었다.


“그럼, 먼저 일어날게. 밥 잘 챙겨 먹고 다녀.”

마지막 말은 하지 않는 건데. 이 상황에서도 오지랖은.


“그래. 조심히 들어가.”

나는 언제나 그의 끼니 걱정을 했었고, 그는 언제나 나의 밤길 걱정을 했었다. 헤어지는 중에도 습관처럼 우리는 서로를 걱정했다.


먼저 일어나서 카페 문 앞까지 오는 동안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봤을 때 나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고, 나를 보고 있지 않으면 울 것 같았다.

슬프지는 않았지만, 지나온 시간이 있으니까.

천천히 문을 열고 나온 뒤에야 슬쩍 유리 너머에 있는 그를 살폈다. 그는 두 손바닥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슬픈 걸까? 아니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할지 모르는 걸까? 지금의 감정과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이 생겼고,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뿐이다. 마음이 변하거나 식은 거라고 말할 수도 없게, 그냥 뒤로 계속 밀리다가 잊혀 버린 것뿐.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잊어버리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내가 잊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가 없게 되니까.




오늘은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밤새 뒤척이느라 더 잘 기운도 없었다.

토요일에 헤어질 걸 그랬어. 그럼 하루라도 조용히 쉴 수 있었을 텐데.


“영서 씨, 일찍 나왔네”

“네~ 팀장님도 일찍 오셨네요? 좋은 아침입니다~.”


그 사람과 헤어지게 만든 평범한 하루가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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