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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섬 Jun 13. 2019

그 남자

이책이글 62회_이글_아직도_170321

길모퉁이에서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 또래인 것 같았다.

뭐라고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저기요. 로 시작해서 대뜸 번호를 물어봤던 것 같긴 한데.


처음부터 대꾸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지만

누가 말을 거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무시할 수 있겠어.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닌가?


대충 몇 마디 대답만 해주고 가려고 했는데

자꾸 쫓아오면서 말을 걸었다.

얼굴을 쳐다보면 본격적으로 말을 시작할 것 같아서

아예 발만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후회가 된다.


그 남자를 피할 생각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니, 생각보다 다리가 먼저 움직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다리가 생각을 했던 거겠지.

빨리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돌아보진 않았지만, 발소리가 들렸다.

그 남자도 뛰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인지 궁금했지만 돌아볼 수가 없었다.

얼굴을 보거나, 얼굴을 보여주면 더 큰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여기는 사람도 많은 큰길인데,

사람들에게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그런데 뭐라고?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누가 말을 걸었는데 대답을 안 하고 뛰었더니 쫓아오고 있다고?


내가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발소리가 늘어났다.

누군가 따라서 뛰고 있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뛰고 있는 거지?

술래잡기라도 하는 줄 아는 건가?


한두 명씩 따라오던 사람들 숫자가 순식간에 불어났다.

이제 열 명이 넘는 것 같다.

그중에 몇 명은 내 앞에서 달리고 있다.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멈출 수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뛰고 있는 사람 중에 누가 처음 그 남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이라도 봐둘걸. 다시 후회가 밀려왔다.


모두가 그 남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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