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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섬 Jun 17. 2019

선배

이책이글 70회_이글_전설_180611

주말 늦은 시간의 쇼핑몰은 대개 한산하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다 돌아가고, 멀티플렉스 극장에만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다.

흥행영화라도 걸려있을 때는 밤에도 북적거리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그나마도 없다.


이런 시간에 서로에게 집중할 이유가 없는 남녀가 마주 앉아있으면 무의미한 말들이 사이를 떠다닌다.

서로에게 말이 닿지 못하지만, 그래서 안심할 수 있다. 애초에 서로 무의미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상대니까.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다.


"넌 연애 안 해?"

"연애는 무슨. 생각 없어.”

여자가 시큰둥한 얼굴로 휴대폰만 보며 대답했다.


"그래 뭐, 연애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막상 나만 연애하는 게 미안하니까 그렇지. 그럼 이상형 같은 건 없어?"

"그냥 뭐, 착하고 좋은 사람? 요즘에는 제대로 된 남자 찾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냥 말이 통하는 남자라도 만날 수 있으면 다행이지."

“그렇긴 하지만, 그건 일단 만나봐야 아는 거고. 스타일은?"

“꾸민 듯 안 꾸민 듯 꾸민 남자가 제일이지. 뭘 하든 센스가 중요한데, 그게 한눈에 딱 보이는 남자들이 가끔 있어. 정말 가끔인 게 문제지만. 사실 그렇다고 내가 뭐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발목까지 접은 청바지에 약간 루즈한 셔츠를 입은 적당한 키의 약간 마른 남자?”


여자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을 이었다.


"어? 저기 저 남자 보여? 저 정도면 될 것 같아. 좀 센스있어 보이지 않아?"

"누구? 어디?"

"저기 팝콘 들고 서 있는 남자 있잖아!"

"어? 저 사람.."

"왜? 뭐야? 아는 사람이야?"

"응. 학교 선배야. 대학교."

"아 정말? 세상 진짜 좁네. 친했어?"

"아니. 그냥 얼굴만 아는 정도? 저 선배는 아마 나 모를 거야. 나도 그냥 얼굴만 아는 거고."

"그럼 이참에 좀 친해져 볼래? 가서 말 걸어봐. 겸사겸사 나도 소개시켜주고."

"에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마찬가진데 어떻게 그래."

"그래도 얼굴은 안다며?"

"나만 저 선배 얼굴 아는 거지. 선배는 나 모른다니까."


여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남자를 바라봤다.


"흐음.. 너 혹시…"

"혹시는 무슨. 옆에 여자친군가 본데? 야, 이제 영화 시작하겠다. 들어가자."

"너.. 수상해. 뭐 됐고, 그럼 팝콘은 니가 사."

"내가 왜?"

"더 안 물어보는 대신. 됐지?”


먼저 일어난 여자는 어쩐지 신나 보였고, 남자는 투덜거리며 따라 일어났다.

남자의 시선은 다시 선배에게 향해 있었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여전히, 여자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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