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섬 Jun 19. 2019

내가 왜 그랬을까

이책이글 74회_이글_이야기_180721

사람마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의 시간이 그렇다. 모닝커피를 찾는 사람도, 점심 먹고 나서의 나른함을 쫓으려는 사람도 다녀간 뒤의 한가한 시간. 대부분의 날에 손님이 없는 시간. 나는 그 시간 동안 햇살을 받으며 멍때리는 것을 좋아한다. 충실하게 멍을 때려주고 나면, 다시 한번 기운을 내서 살아보자는 의욕이 솟는다.


하지만 오늘은 충실하게 멍을 때릴 수가 없었다. 손님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의 첫 손님이었다. 오픈 안내판을 걸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와 맥주를 주문했다. 새벽 같은 아침부터 맥주라니. 그는 천천히 맥주를 마시며 밖을 보고 있었고, 앉은 자리에서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 있으면 한두 마디 나눌 법하지만, 나는 손님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문을 받는 것 이외에는 절대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손님이 말을 걸어도 최대한 짧게 대답한다. 나에게 카페는 최고의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지 동네 사랑방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 손님이 대뜸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당황해서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고, 그대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 10분 뒤에 앞 건물이 무너질 겁니다. 당신까지 위험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알아서 잘 피하세요.“


갑작스러운 말 같지도 않은 말에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가장 바보 같은 말을 꺼냈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하지만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앞 건물만 보고 있었다. 긴장감이 나에게까지 전해져왔다. 그리고, 10분이 지났다. 앞 건물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그는 어느새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런 일이 닥치기 전에 우리는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때로는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힌트를 주기도 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그 신호를 알아듣지 못하거나 무시한다. 생각을 하지 못하니 준비를 하지 못하고, 보통 아무 대책 없이 그런 일을 맞이한다.


건물은 정말로 무너졌고, 사람들이 다쳤다. 이 정도 규모의 사고에서 죽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그나마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건물을 빠져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나만, 오직 나만 알고 있었다.


언제나 이런 순간을 꿈꿔왔는데 현실은 달랐다. 비장하고 멋진, 엄청난 장면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먼지 가득한 전쟁터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 같았다.


매일같이 이런 광경을 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에게 맥주라도 한잔 더 줄 걸, 후회가 된다.

이전 13화 선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