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이글 78회_이글_각자의 밤이 지나고 있었다_181011
나는 그가 필요했다.
그도 내가 필요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괜찮을 거라고 했다.
먼저 말하면 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도 들었을 것이다.
나는 나가고 싶었다.
오래도록 나갈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
그와 내가 같은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앞으로 가면 그가 뒤를 맡았고,
그가 먼저 가면 내가 뒤를 따랐다.
그게 언제쯤이었을까.
이번에는 누가 앞으로 가고, 누가 뒤에 남게 될까.
그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볼 수 없다고 해서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하는 것조차 신경이 쓰였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 어떡하지.
앞을 볼 수는 있지만 보이지 않았고, 옆을 볼 수는 없었다.
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먼저 말했을까?
그는 이미 나갔을까?
너무 조용한데?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했던 나는, 역시 너무 무른 걸까?
매일 같은 시간이 흐르던 그와 나 사이에
각자의 밤이 지나고 있었다.
무서웠다.
내일 아침에 그가 없을까 봐.
나만 남게 될까 봐.
그래서 그랬다.
그래서,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