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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륜 Oct 17. 2021

애 낳기 3일 전, 남편이 암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니 괜찮다고 입을 털었던 과거의 나를 매우 친다


2017년에 브런치에서 마지막 글을 발행하고 4년이 지났다.

사회 초년생이 갖고 있던 글에 대한 열정은

세월과 주위 눈총에 휩쓸려 움츠러들었고,

브런치에 썼던 글 일부를 지우고 지냈던 그 사이에

나는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가졌다.


브런치 계정만 살려둔 채 지내긴 했지만

여전히 병원 홍보일을 하며 건강과 의료 성과에 대한 글은 써왔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누군가 이 질환에 대한 질문을 해올 때마다 나는 같은 답을 했다.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 당장 진료를 받지 않아도 괜찮아. 수술이 조금 늦어져도 전이가 되거나 할 가능성이 적으니 마음 편히 기다렸다가 원하는 교수님께 수술받는 게 좋을 것 같아"



자,

이런 말을 뱉던 과거의 나는 입을 다물었어야 한다.



나는 올해 3월 말,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애 낳기 3일 전,

남편은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작년에 내가 다니던 병원에서

코로나 때문에 건강검진 수진자가 적어지자

직원 가족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대폭 할인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남편도 건강검진을 시켜줬는데,

그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결절이 나왔고,

내분비내과 의사의 처방으로 조직검사를 해보니 grade5, 유사암이었다.


조직검사를 처방했던 내분비내과 의사는

암 진단이 나왔으니 수술 일정을 잡으라며 내분비외과 진료를 잡아줬다.


가장 일정이 빨랐던 B교수 대신,

나는 우리 병원에서 가장 갑상선 수술을 많이 한다는 A교수 진료로 남편의 외래진료 일정을 바꿨다.


그리고 A교수의 외래 진료를 보고 잡힌 수술일정은 7개월 후였다.




7개월 동안 남편이 암환자라는 사실을 크게 의식하진 않았다.


애를 낳고, 내 몸을 챙기고, 커가는 아이를 버텨내며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그렇게 7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남편은 내일모레, 갑상선 전절제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을 한다.

의도적으로 의식 저편에 미뤄두었던,

남편이 '환자'라는 사실이 이제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마음 편히 지내고 있다가 수술 일정 맞춰서 수술하면 돼'라는 얘기가 얼마나 거만하고 재수 없는 말이었는지 체감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질환이라도

그게 '내 일', '내 가족의 일'이 되는 순간 작지 않다는 걸 그동안 잊고 지냈다.


초조하고 불안한 남편의 투병,

그리고 200일 된 딸과 암 수술하는 남편을 동시에 돌봐야 하는 나의 묵직한 부담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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