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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륜 Oct 06. 2023

친정엄마를 끌고 필라테스에 갔다

42년 만에 운동을 시작하기까지


처음부터 친정엄마와

운동을 같이 할 생각은 없었다.


만 두 살 된 딸의 등하원을 도와주면서 간호사 일을 병행하고 있는 60대 초반의 친정엄마는

기본적인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했었)고,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 단 한 번도 제 발로 운동을 찾아 나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친정엄마도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다리가 휘고 허리가 안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게다가 아침마다 30개월짜리 손녀와 씨름하면서 에너지가 쪽쪽 빨리는 걸 알면서도

흐린 눈으로 바라봤다.


 엄마가 아프면, 애의 등하원에 문제가 생기고, 나의 출퇴근에도 문제가 생기고- 점점 커져가는 워킹맘의 비극적인 생각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에 흐린 눈으로 더듬거리며 상황을 모면하곤 했다.

반신욕 좀 해봐, 마사지라도 받아볼래?  라면서.


평소 이런 미끼는 잘 물지 않던 친정엄마가, 갑자기 덥석 내가 던진 한마디를 물었다.


무릎이 안 좋으면 PT라도 받아볼래? 아파트 지하 헬스장 있잖아-

그럴까?


당연히 귓등으로도 안들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이람.




아파트 지하에 있는 헬스장 PT는 난이도가 엄청 높기로 유명해서,

애 낳고 얼마 안 된 내가 받았다가 팔 벌려 뛰기 200개를 몸풀기로 하고는 족저근막염을 얻었고,

50분 그룹수업을 받으면 토하면서 집에 오는 수업이었다.


그래서, 그 헬스장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아니었다.


적당히 엄마의 무릎과 허리에도 도움이 되면서

엄마가 다니기 민망하지 않은 운동은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수영은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수영장이 없으니 탈락,

테니스나 배드민턴은 엄마가 반려.


그렇다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엄마도 할 수 있는 운동-

필라테스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필라테스, 발레, 요가를 띄엄띄엄 번갈아 했었고

집 근처에 있는 필라테스 스튜디오는

애 낳고 100일이 지났을 때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다행히 엄마는 필라테스가 재활 목적으로 생긴 운동인걸 알고 있었고,

필라테스를 하라고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혼자 하기는 싫다는 걸 마음 돌리느라 졸지에 나까지 1:2 수업을 등록해 버려,

예상보다 많은 지출이 생긴 게 흠이랄까.




그동안 엄마는 내 딸의 등하원을 도와주면서도

용돈을 극구 거부해 왔다.

본인이 월급 받는 일을 잘하고 있고,

내 손녀 내가 돌보는데 무슨 돈이냐며-


그래서 이번 필라테스 비용은

그동안 엄마한테 못준 육아비 대신인 셈이었다.


시원하게 20회 결제를 해놓고

기분 내라고 운동복도 사줬다.

자칫 무좀양말 같은 필라테스 발가락 양말은

내 딸이 할머니를 위해 노란색으로 골라줬다.


 엄마를 위해 같이 운동할 생각을 하다니,

60이 넘은 엄마한테 젝시믹스 운동복을 사주다니,

아 역시 나는 멋지게 큰 첫째 딸이야- 하는 자기만족은 덤이었다.


30개월된 손녀딸이 골라준 외할머니의 필라테스 발가락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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