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륜 Jun 03. 2016

나는 엄마에 대해 너무 몰랐다

엄마와 떠난 첫 여행지, 일본 오사카

우리 엄마는 내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돈을 벌기 전까지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다.


열네살의 딸년이 혼자 공부하고 오겠다고 중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에도 엄마는 그저 비싼 리무진버스를 타고 공항에 잠깐 들르는게 전부였다. 천방지축 아들놈이 허파에 바람이 들어 영국으로, 일본으로 쏘다닐 때에도 엄마는 한번도 당신이 가고싶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직도 환자를 상대해야 하는, 스케줄 근무로 움직이는 일을 하는데다 쉬는 날도 불규칙하기에 미리 계획하고 준비할 게 많은 해외여행은 중간에 엎어질 여지가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큰 이유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징그럽게 커버린 딸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부터 여기저기 쏘다니더니 회사도 한번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녔고, 나가 사는 아들녀석은 존재자체로 걱정거리인데 차마 그 와중에 여행을 우선순위에 놓는건 사치였을거다.


그러던 엄마는 내가 자리를 잡고나서야 대학 동창들과 어울려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번 여행을 다녀오더니 이제는 엄마가 불이 붙었다.


엄마는 가고싶은 곳이 많아졌다.

한창 '꽃보다' 시리즈가 유행할 때엔 스페인을 외쳤다가, 크로아티아로 바뀌었다가, 다시 또 일본과 중국을 입에 올렸다. 정기적으로 여행을 가겠다고 아줌마들과 적금을 붓기도 했다(지금도 진행중이다).


엄마가 슬슬 여행의 재미를 알아가는 것 같아 내가 기름을 부을 요량으로 어느날 갑자기 제안했던 것 같다. 일본에 가자고.

사실 오사카를 선택한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가 안가본 도시이고, 한국과 가깝고, 맛있는게 많았고, 현대와 전통을 볼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 정보가 넘치는 도시이기도 했다.

엄마랑 떠난 첫 해외여행은 어려웠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 대중목욕탕을 거의 안가는 나에게, 일본식 온천이 딸린 호텔에서 엄마랑 같이 목욕하는게 제일 낯설었다.


딱히 다정하고 애교있는 딸이 아니기에, 단둘이 케이블카를 타는 것도 뭔가 어색했다. (다행히 케이블카 안에 스피커가 있어서 핸드폰을 연결해 음악을 들었다)

초행길인 오사카에서 더운날 길도 헤매고, 일본어로 가득한 메뉴판을 보고 감으로 음식을 시켰는데 실패하기도 했다. 맛있는 척 하고 먹었지만 맛이 없었다.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나름 꼼꼼히 가이드북도 읽어보곤 했는데 현장에선 아무 쓸모가 없었다. 가이드북에서 알려준 음식점들은 한국인 집합소같았고, 심지어 전철역도 다른 이름으로 표기돼있었다.


엄마도 많이 힘들고 피곤했을거다. 하루만에 처음 도시를 돌고, 다음날 다시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넘어가는 꽤 빡빡한 일정이었다. 자유여행의 힘든 점을 톡톡히 맛본 기분이었나보다. 엄마는 밤마다 아주 곤히 곯아떨어졌다.

오사카는 시끄러웠고, 교토는 차분했다.

2박3일의 짧은 시간동안 두 도시를 보고, 많지 않은 얘기를 하고, 많은 음식을 먹었다.


나는 여행할 때 주구장창 먹는 스타일인데, 엄마의 위가 내 여행스타일을 버거워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더 많이 먹고 왔어야 하는데. 게다가 일본인데.

엄마와의 첫 여행은 시행착오가 많았다.  내가 엄마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엄마가 어떤 여행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여행지에서는 잘 먹는 편인지, 잠자리는 가리지 않는지, 외국인들과 섞이는 것을 어려워 하지는 않는지, 얼마나 걸으면 피곤하다고 느끼는지. 나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같이 여행을 해봤어야 알지.



그런 의미에서 이 일본여행은 어렵고 낯설었지만 의미가 있었다.


흔히들 지금 만나는 애인이 결혼할 상대인지 알아보고 싶으면 여행을 다녀보라 말한다.

여행지에서는 서로가 미처 신경쓰지 않았던 일상의 모습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일게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애인뿐만이 아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몰랐던 모습을 더 생경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을 할 권한이 내게 없을 뿐이다.


오사카를 떠올리면 호텔 온천에 들어가던 그 낯선감정과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의 당황스러움, 세시간에 한 번씩 뭔갈 먹어야한다고 주장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의 머릿속에 있는 오사카 역시 그런 느낌이면 어떡하나, 문득 걱정이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부터 다른 한 해,제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