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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륜 Jun 06. 2016

엄마를 내 추억속으로 데리고 오다

엄마와 떠난 두번째 여행, 상하이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항저우,쑤저우가 있다"

중국의 명언도 있을만큼 중국인들에게 항저우는 조용하고 아늑하고 예쁜 도시, 나이들면 꼭 살고싶은 도시다.


나는 그런 항저우에서 유학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곳이 싫었다. 혈기넘치는 이십대 초반에게는 너무 무료하고 재미없는 도시, 우울하고 칙칙한 도시였다. 교환학생으로 같이 온 남자는 타과생이라 전혀 몰랐고, 내 동기들은 전부 상하이에서 있었기때문에 나는 항저우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틈만나면 상하이로 달려갔다.


친구들 기숙사에 머물기도 하고, 게스트하우스에 묵기도 하면서 일년의 유학생활동안 열번은 족히 간 것 같으니 한 달에 한 번 꼴이다.


그래서 나는 항저우에서의 추억보다 상하이에서 만든 기억들이 더 많다. 처음 상하이 기차역에서 느낀 그 공기, 와이탄 야경을 본 날의 차가운 바람, 가난한 유학생들이 손에 캔맥주 하나씩 들고 앉았던 빈장다다오, 사람구경에 지쳤던 상하이엑스포, 한국에서 놀러온 언니오빠들을 데리고 갔던 밥집-


언제 가도 상하이는 예뻤고,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활기넘치는 도시였다.

그만큼 애정이 있었고, 언제라도 또 다시 가고싶은 나라를 꼽으라면 항상 일순위에 올려두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 없이 살아봤던 그 도시를 가고싶어했다.

내가 어디서 공부했고 어디서 잠을 잤고 어디서 무엇을 먹으며 생활했는지, 처음엔 그저 "거기 좋았냐" 라고만 물어보던 엄마가 이제는 "한번 가보자" 라며 운을 떼기 시작했다.


항저우는 엄마에게 소개할 추억이 없었다. 어렵게 시간을 맞추고 휴가를 내어서 가고싶지는 않았다.

회유작업이 시작됐다. "엄마 내가 더 예쁜 도시 알아, 내가 더 속속들이 잘 아는 동네가 있어, 항저우보다 더 좋아, 후회하지 않을거야"

엄마를 꼬여 상하이로 노선을 정했다. 쾌재를 불렀다. 잘 아는 도시, 잘 아는 숙소, 잘 아는 음식들, 예전보다 넉넉해진 주머니- 일본에 갈 때보다 내 말에는 자신감이 있었고, 계획을 정하는 것도 거침이 없었다. 이제야 비로소 '여행좀 해본 딸'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데리고 상하이에 도착한 순간부터 온갖 좋은 곳만 찾아다녔다.

입구에서부터 호텔마냥 서비스가 따라붙는 비싼 훠궈집, 유학할 땐 엄두조차 나지 않던 빈장다다오 강가의 수입맥주집, 신천지의 독일 소세지. 마치 일본에서의 여러 시행착오를 한번에 극복했다는 듯이 최소한의 동선과 최대의 효율로 고급진 곳만 골라갔다.

사실 유학할 때엔 이런 것들은 엄두도 못내던 거였다.

친구들과 상하이에서 만날 때엔 비싼 물가에 다들 돈을 쪼개고 쪼개서 한그릇에 10위안짜리 (현지인밖에 안먹는)볶음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레스토랑이라도 들어가려면 문 앞에서 메뉴판을 한참씩 들여다 보았고, 콜라 하나라도 시킬 참이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야경이 보이는 곳에서 맥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편의점에서 3위안이면 먹는 맥주를 40위안을 주고 마실 순 없었다. 우리는 캔맥을 사들고 강가 아무 곳에나 털썩털썩 앉아 마셨다.


하지만 엄마에겐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나 되게 좋은 곳에서 잘 지내다 왔어, 새로운 것들도 이렇게나 많이 접했어, 어때, 중국으로 보내질 잘했지, 엄마도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이런 것들 누릴 자격이 있어'

엄마와 함께 한 상하이 여행 중에 내가 안가봤던 곳은 딱 한군데였다. 주가각.

상하이에서 버스를 타고 한시간쯤 가는 곳인데, 혹 이곳에서 길을 잃을까 시행착오를 겪을까 노심초사 했다. 하지만 역시 중국의 행운은 나의 편이었는지, 버스도 딱딱 맞고 음식도 뱃놀이도,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도 완벽했다.


엄마는 일본과는 다른 중국의 매력에 폭 빠졌다. 지금도 장가계를 가네, 리장을 가네 하고 있다.

일본보다 편했고, 마음도 주머니도 넉넉했고, 예뻤던 중국이라 말하고 있다. 딸 하나 잘 키워서 중국여행 편하게 다녀왔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했단다.


중학교 이학년 겨울, 딸을 혼자 비행기에 태워 중국으로 보냈던 날부터 엄마는 중국이 궁금했을 거다. 그런 궁금했던 나라, 딸의 20대 초반을 채우고 온 그 도시에 이제야 엄마를 데리고 왔다는 게 조금 미안하지만, 이제라도 내 추억을 엄마와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상하이는 이렇게 또 다른 의미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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