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홀로 떠난 후쿠오카- 유후인 료칸여행
우리집은 제사를 안지낸다.
대다수가 기독교인 우리집은 명절에 그저 모여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 걸로 명절을 대신한다. 그래서 명절 점심부터는 자유다. 주변 사람들이 고향으로 떠날 때, 그리고 차가 언제 막히기 시작할까를 계산하며 귀경 준비를 할 때 나는 집에서 뒹굴뒹굴 티비를 보는게 명절 일상이다.
직장인이 된 이후, 명절은 내가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일종의 휴가가 됐다.
챙겨야할 제사도 없지, 집에서 눈치볼 사람도 없지, 결혼하면 가차없다며 얼른 떠나라는 선배들의 조언도 한몫을 했다. 그래서 명절이면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한다.
작년에는 주로 엄마랑 다녔는데, 이번에는 홀로 떠났다. 약간의 로망을 가지고 있던 한겨울 노천온천으로-
후쿠오카 공항에서 바로 유후인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유후인에는 수많은 료칸들이 있는데, 보통 2인 기준인 곳이 많아서 어찌어찌 찾아보다 혼자도 숙박이 가능한, 그리고 혼자 이용 가능한 온천이 있는 곳으로 숙소를 잡았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한 안내를 받고 짐을 풀고, 바로 노천온천으로 갔다.
아무리 사방이 막혀있고 혼자라고는 하지만 한겨울에 홀딱 벗고 찬 공기를 맞으며 탕에 들어가기란 익숙한 감각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머리 위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몸은 따뜻하고, 사방은 조용하고 물소리는 찰랑거렸다. 사귄지 얼마 안된 남자친구와의 메신저가 적적할 수 있는 분위기에 감초가 됐다. 핸드폰이 물에 떨어질까봐 저 멀리 바깥으로 손을 뻗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메신저를 보냈다는것 말곤, 모든게 완벽했다.
나는 1박 2일을 묵는 동안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온천욕을 했다.
료칸여행의 화룡점정은 저녁식사로 준비된 가이세키였다.
내가 묵은 숙소는 그다지 고급료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코스요리부터 해서 생맥주 한잔, 갓 구운 고기 한 점, 그리고 명성 자자한 일본의 쌀밥 한그릇이 너무나 따뜻하고 든든했다. 고소하고 시원한 기분이었다.
배불리 먹고, 소화를 시키고, 다시 밤에 내려가 온천욕을 하고 (물론 밤에는 무서워서 길게하진 못했다)가져온 책을 읽고, 잠에들었다.
다녀본 여행 중 가장 여유롭고, 한가하고, 넉넉한 기분이었다.
유후인은 작고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왔다면 더 따뜻할 것 같은 도시였다.
유후인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았고, 료칸에서 느낀 온천물의 감촉, 풍성했던 이불의 촉감, 사르르 풀리던 쌀밥의 식감, 따뜻했던 내 머리위로 불던 겨울의 찬바람이 아직 몸에 그대로 남아있어서인지, 후쿠오카는 상대적으로 무료했고 건조했다. 후쿠오카에서는 거의 모든 시간을 맛집탐방에 쓰고 왔다.
후쿠오카에서는 크게 기억에 남는 느낌이 없었지만, 하나를 꼽으라면 이 장어덮밥이다.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이 아닌, 남자친구가 내 숙소와 가깝다며 인터넷으로 찾아서 링크를 보내줬던 곳인데 인생 최고의 장어덮밥+오차즈케를 먹었다. 저녁 늦은시간에 갔어도 한참을 기다려 들어갔는데, 한 점 한 점 입에서 녹아 사라지는 장어가 아쉬워서 혀로 살살 으깨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1/4은 그냥 덮밥 채로 퍼서 먹고, 1/4은 대파를 올려 먹고, 1/4는 오차즈케로 만들어 먹었는데 정말 하나같이 다 맛있어서 나머지 1/4을 어떻게 먹을까를 가지고 한참을 고민했던 것 같다.
후쿠오카에서는 주구장창 먹기만 했다. 명란으로 유명한 식당에 가서 명란세트를 먹고, 혼자 한 시간 줄을 서서 모츠나베를 먹었다. (일본은 아직도 식당 내에서 담배를 핀다는게 문화충격이었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회덮밥을 먹고, 먹고 먹다 끝이 났다.
매 끼 한잔씩 곁들인 생맥주와 맛있는 음식들, 료칸여행이 주는 아늑함과 고요함,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 마음 한켠이 따뜻했던 후쿠오카 여행 끝! 또 다시 간다면, 료칸에서 더 오랜 기간을 머물겠노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