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륜 Jun 05. 2016

레슨일지#1 기본을 지키는 일

직장인 취미생활, 클라리넷

기본을 지키는 일이 가장 어렵다.


레슨을 시작한 지는 몇주 됐지만 그동안은 잊고있던 아주 기초적인 것들,

예를들면 마우스피스를 어느정도로 깊숙히 물어야 하는지, 어느음에서 어느음으로 갈 때 손가락과 호흡을 가장 신경써야 하는지- 와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면 오늘부터는 조금 체계적으로 기초스케일링과 곡을 같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오케스트라 내에서 합주를 하며 악기를 배웠기 때문에 1:1 레슨을 정식으로 받아본 적이 없다.


그저 밴드 내에서 단장님이 처음에 알려주던, 기본적인 호흡과 운지 외에는 전부 다 알음알음 다른사람들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기초가 약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손가락 기교로 넘어갔던 경우가 많았지만 다시 악기를 시작하면서는 제대로, 기본부터 하나하나 배우고 싶었다. 선생님께도 패기넘치게 말씀드렸다. 처음부터 꼼꼼히 다시 배우겠다고.

우리 병원 지하 직원라운지 노래연습실은 훌륭한 악기연습실이 된다. 방음과 냉방 모두 완벽하다.
그리고는 바로 후회했다.


피아노를 배우면 '체르니'를 떠올리듯, 클라리넷을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교재는 '랑게누스' 라는 책이다. 사람이름이기도 한데, 각종 운지부터 리듬, 스타카토, 아티큘레이션 등을 연습하게 돼있다.


분명히 예전에 랑게누스로 한번 그룹연습을 했었는데, 십몇년 만에 다시 보려니 전혀 생각이 안난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있는 랑게누스보다 훨씬 어렵다. 눈은 악보를 찾아 빙글빙글 돌고 혀는 마음처럼 안움직이고, 호흡은 실오라기처럼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다 자꾸 끊어진다.  

기본을 늘려가는 이 과정은 너무 고통스럽지만 랑게누스를 떼고나면 어지간한 악보는 두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주1회의 레슨으로 언제쯤 다 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초견으로 불고 나서(악보를 처음 보고 바로 불어보는 것)꽤 자신감이 붙었다.


아주아주 쉬운 악보였지만 기초적인 리듬, 악장, 악보보는 법(도돌이표, 코다 넘어가기 등)을 지키려니 살짝 긴이 됐다.


다행히, 한없이 시크한 레슨선생님의 "조금만 더 하면 옛날만큼 하시겠는데요" 라는 지나가는 칭찬 한마디 고래처럼 들썩들썩 춤추며 레슨실을 나왔다.



나에게 이 레슨선생님을 소개해준 우리병원 정형외과 교수님께 며칠전 전화가 왔다.


"오케스트라 언제들어오실거예요" 라는 앞뒤잘린 멘트에 나는 이러쿵저러쿵 변명을 했지만 교수님은 빨리 악보받고 들어오라고 하셨다. 다음주에 악보를 받고, 이달 말부터 연습에 들어갈 계획이다. 과정이야 어쨌든 내 예상보다 빠르게 원내 오케스트라에 합류할 수 있게 됐다.


'직장인이 되고나면 회사에 오케스트라가 있었으면 좋겠다, 들어가서 악기 불게' 라는 막연했던 내 바람이 작지만 이렇게 이뤄졌다.


당분간은 조금 더 기본에 충실한 레슨을 받고 이번 여름부터는 오케스트라와 레슨을 병행하게 된다. 십년 전, 방학만 되면 뮤직캠프에 가서 밤낮으로 악기 불 던 때가 떠오르는 여름이 다시 돌아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크린으로 보는 세계 각지의 먹고 사는 모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