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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륜 Jul 11. 2016

책 읽는 제주

책 읽는 여름휴가, 제주도 4박 5일

수요일 퇴근 후에 출발해 총 4박5일의 여름휴가 동안, 여섯 권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겠노라 다짐하고 내려온 여행이긴 했지만 이렇게 눈이 빠지게 읽을 줄은 몰랐다. 이번여행은 두말할 것 없이, 먹고 자고 책을 읽고 꽃을 본, 그런 제주 여행이었다.

처음엔 전자책에 있는 책을 읽으려고 가지고왔는데, 내려와보니 게스트하우스 주인언니가 다음 주인에게 넘기기 위해 꺼내놓은 책들이 많았다. 박완서, 신경숙, 김애란... 이상하게 눈에 들어온 책들은 전부 여성작가들의 얘기였다. 이번에 읽지 않으면 다시는 이 숙소에서 이 책을, 이런 분위기에 취해 읽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전자책을 미뤄두고 책장에 꽂혀있는, 이미 너무 오래 꽂혀있어 책등의 색이 바랜 소설들을 꺼내들었다.


책을 읽는동안 나는, 거식증에 걸린 친구를 잃은 슬픔에 잠겼다가,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가 되었다가,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가, 살인범 아비를 감당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가, 울다가 웃고, 정신을 잃었다 차린다.


물회 식당앞에서 순번을 기다리면서도 읽었다. 파도가 성나게 울어대는 바다 옆에서, 간이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바다냄새인지 식당에서 풍기는 참기름냄새인지 모를 고소하고 비린 것이 맡아졌다. 나는 고소하고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책장을 넘겼다.


글이 주는 여운은 책장을 덮는다고 칼같이 끊기는게 아니어서, 나는  이동중에도,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도, 맛집앞에 줄을 서서도 끊임없이 전쟁을 겪고 아비와 오빠를 잃은 심정이었고, 친구의 자살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오래된 인삼껌을 씹고있는 기분이었다.


그런 나에게 일행들의 대화소리나 아이돌이 목청껏 지르는 노래소리는 소음일 뿐이었다.


비록 몸의 이동은 적었으나, 마음의 움직임은 그 어느때보다 격렬했던 여름휴가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을정도로, 활자에 취하고 이야기에 빠져있던 제주도 끝이 났다. 마음과 생각의 폭이 일미리미터쯤 커져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다음엔 정말 오롯이 혼자인 곳에서 책을 읽다 오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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