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륜 Sep 18. 2016

몸 뉘일 곳의 변화

방 인테리어 바꾸기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나서는 내가 금방 결혼 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여차저차 계획이 뒤로 밀리면서 '결혼해서 내 집을 꾸며야지' 라는 생각은 '어서 빨리 내 방부터 바꿔야지'라는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학생때 사놓은 넓은 책상과 학생용 가구들은 이십대 후반이 된 나에게는 여러모로 쓸모가 없었고, 

대학생 때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학생때엔 정말정말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고 중국에 나가있어서 일년반은 이 방에서 살지 않았다) 내 방에 대한 불만이 가득 쌓여가던 참이었다.


추석때 예매해둔 유럽행 비행기표를 취소하면서, 그 여행을 위해 모아뒀던 돈으로 방을 전면 바꾸기로 했다. 

수납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무조건 수납을 1순위로 하되, 기성가구들로는 도저히 각이 안나와서 인터넷을 뒤져 내가 계획한 디자인을 보여주고 견적을 물어봤다.


몇몇 업체에서 견적을 받았고, 그중에 한군데인 ㄹ ㅏㅈ ㅏ인테리어에 실측을 부탁해 진행하기로 했다.

뒤에도 말하겠지만 업체는 시공도 잘 했고 디자인도 내가 원하는대로 잘 나왔지만 일의 마무리가 좋지 못했고, 대충 한 실측때문에 콘센트 두개를 못쓸뻔 했었다. 

기존의 방에 있던 가구들은 전부 화이트였는데, 붙박이가 아니다보니 윗공간이 남았고 책상도 대학생 이후로는 쓰지않고 거의 방치돼있었다. 옷장도 학생용 옷장이라 구성이 조금 안맞았고 그나마도 위에 캐리어를 올리고 내리면서 무너진 상태였다.

실측을 하고, 도안을 받고 이런저런 사소한 디테일을 수정하고는 2주쯤 뒤에 시공이 시작됐다. 방 전체를 작업해야해서 나는 월차를 냈고, 물건들을 미리 빼느라 이사가는 것마냥 난리도 아니었다.


시공하는 인부 두 분이 오전에 왔고, 실측하러 온 대표는 점심즈음에 와서 인부들 점심을 챙기고, 공사 중간에 대금을 결제하고는 갔다. 근데 그때는 이게 그렇게 문제가 될 줄 몰랐지. 무튼 공사는 거의 하루종일 걸렸고, 기성가구 배치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꼼꼼해야했고 자르고 붙이는 것들은 모두 한참 걸리는 일들이었다.

다섯시가 훌쩍 넘어 끝이났다. 문제는 수납장의 한쪽 문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표는 나에게 한마디 얘기가 없었고, 시공한 인부는 '월요일에 와서 달아줄거예요' 하고는 갔다. 하지만 월요일에도 연락이 없었고, 월요일 저녁에 퇴근하고와서 내가 문자를 보냈더니 화요일에 연락이 왔다. 수요일 오전에 와서 달아준다고. 


침대밑에 만든 수납장 손잡이들은 첫날부터 저렇게 툭툭 떨어져나오길래 보니까 글루건이 엉성하게 붙어있었다. 이건  말하기도 귀찮아서 다이소에서 접착제를 사와 붙였다.


우리집은 엄마가 나이트근무를 하는 간호사이고, 낮에는 잠을 자야 밤에 일을 할 수가 있다. 수요일 오전에 와서 달아준다기에 내가 다시 전화를 해서 몇시쯤이냐고 정확히 되묻기도 했다. 열시반쯤 온다고했다.

하지만 수요일 그 시간에도 오지 않았고, 대표에게 다시 전화를 하니 본인이 어제 공장에 확인을 못해봤다고 열두시가 다되어서야 확인을 해본단다. 그러더니 공장과 연락이 안돼서 확인이 늦어진다 블라블라..한시 넘어서는 그날이 말일이라 너무 바빠서 혹시 내일가도되냐고 하길래, 모든게 다 변명처럼 느껴져서 화가났다.


공사하던 날 문이 한짝 안왔으면 나한테 먼저 설명을 했어야지. 일언반구도 없다가, 내가 너무너무 화를 내니까 그제서야 본인이 언제 주문을 넣었고, 언제는 확인을 못했고, 지금은 어떠하고 저떠하고를 얘기하는거다. 결국 시공은 오후 4시반이 넘어서야 도착했고, 그날 엄마는 몇시간 못 자고 병원에 출근했다.


앞으로는 모든 시공이 끝나기 전에는 결제를 미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공사 중간에 실측이 조금 잘못돼서 콘센트 구멍 두개를 날리느냐, 수납장 폭을 줄이느냐를 가지고 시공하시는 분과 대표가 전화로 상의를 할 때에도, 나보고 전화해서 그냥 콘센트 두개 없이 지내면 안되냐고 하길래 너무 화가났었다. 우리는 편하게 살려고 비싼 돈을 주고 공사를 맡기는건데, 방에 세개 있는 콘센트에서 두개를 막으라니? 내가 이 콘센트 길이 고려된건지 확인을 안한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시공하시는 분이 첫인상은 차가웠지만 일에 있어서는 확실하신 분이셔서, 그분이 오히려 '지금 이 콘센트 막으면 불편할테니, 수납장 폭을 4cm 줄이겠다' 고 하셔서 일단락됐다.

시공과정에 문제는 있었지만, 가구는 계획한대로 잘 나왔다. 

침대 밑 수납공간이 의외로 엄청난 수납이 가능해서, 물건이 다 들어가고도 칸이 남았다. 공사가 끝난 8월 말만 해도 더워서 여름이불을 썼지만, 공사가 끝나고 오래된 베개는 다 갖다버리고 이불, 베개, 접이식책상을 전부 새로 샀다 심지어 쓰레기통도!

그 결과 지금은 엄청 아늑하고 예쁜 공간이 됐다. 베개 종류도 각기 다르게 세개를 준비해서, 원하는대로 골라 쓸 수 있다. 그날의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 기대앉아 무언가를 쓰거나 공부를 하거나 영화를 보기에도 좋다. 침대 머리맡이 장 옆으로 들어가있다보니 창으로 들어오는 빛도 어느정도 차단이 된다. 집중하기에도 좋다.


책도 많이 정리했더니 훨씬 방이 가벼워졌고, 향초를 모아둘 공간도 마련됐다. 

연휴동안 저 향초들 중에 조금 남아있던 세 개를 다 태워없앴더니 새로 사야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이번 추석연휴, 방을 새로한 보람을 제대로 느꼈다. 이 방에서 호텔에 온 것마냥 편하게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미드도 보고, 글도 쓰고, 구몬도 풀었다. 깨끗하고 아늑했고, 향초 덕분에 향기로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랍에서 유물을 발굴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