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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륜 Jan 30. 2017

후쿠오카에서 발레하기

일본어를 하나도 못하는 나도 할 수 있었다

이번 설 연휴 일본여행을 계획한 것은 작년 9월이었다. 비행기 표를 사고, 호텔을 예약하고는 정말 단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다. 후쿠오카라면 한번 가봤었고, 이번에는 근교를 다녀올 계획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먹고 쇼핑만 하면 되는거였다.


그러다 우연히 출발하기 일주일쯤 전에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다가 후쿠오카에서 발레를 하고 온 사람의 글을 읽었다. 외국 여행을 가서 발레 수업을 듣고 오는게 취미발레생들의 유행처럼 번지면서 나도 올 가을 런던에 가면 수업을 들을 예정이었지만, 일본에서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하지만 그 글을 보고, 일본어를 하나도 못하는 나도 눈으로 보고 따라하면 되니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http://www.chacott-jp.com/j/studio/fukuoka/?url=studio/fukuoka


위의 링크가 발레 수업을 진행하는 챠코트 Chacott  후쿠오카 지점의 홈페이지다. 챠코트는 질 좋은 화장품과 비싼 레오타드 ㅋㅋ 등으로 알고있던 브랜드인데, 일본 곳곳에서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었다. 1회 수업은 2910엔인가, 한국돈으로 3만원 정도였다.


후쿠오카에는 텐진미나미역 근처에 스튜디오가 있었고, 텐진역에서 걸어가도 멀지 않은 거리다. 중간에 관광객들의 핫스팟(텐진호르몬, 키수이마루 같은 유명 음식점)이 있어서 운동 전/후에 밥 먹기에도 딱 좋았다.


나는 일본어를 단 1도 하지못하기때문에(정말 간단한, 곤니찌와 곰방와, 아리가또와 스미마셍, 와따시와 캉코쿠진데스- 밖에 모른다) 크롬 자동번역을 돌려서 대강의 시간표를 알아갔고 현장에서 카운터 직원에게 수업을 듣고싶다고 얘기했는데, 그 카운터 직원이 영어를 너무너무 잘해서 한시름 놓고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챠코트 후쿠오카점의 외경. 1층은 무용 관련 아이템을 파는 샵이고 3층이 스튜디오다. 1층 옆에 3층 엘리베이터 타는 입구가 따로 있는데 그냥 못찾으면 1층 매장 직원한테 수업듣고싶다고 하면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해준다.  


챠코트 샵에서도 꽤 구경을 오래 했다. 레오타드는 일단 너무 비싸고 원하는 디자인이 없어서 패스했고, 땀복이랑 슈즈, 그 유명한 챠코트 파우더, 요가매트, 발레쌤 드릴 기념품 정도를 샀다. 이건 따로 글을 쓸 예정.

내가 들은 수업은 목요일 12시 40분부터 2시10분까지 하는 기초반이었다. 입문반은 너무 쉬울 것 같았고, 그 이상은 수업 내용이 짐작이 안됐기에 고른 수업이었다. 낮시간이라 그런지 좀 연령대가 높았고, 주로 30대 후반~50대 인 것 같았다. 60대로 보이는 흰머리 할머니도 한 분 계셨는데, 동작을 너무 잘 따라하셔서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웜업은 너무너무 짧았고(심지어 매트도 안깔고 그냥 함. 매트 깔 필요가 전혀없었다 그냥 10분만에 끝남) 바워크가 꽤 길었다. 바는 저렇게 길~~게 생긴걸 사람들이 다같이 허이짜! 하고 들고는 조심조심 라인을 맞춰 내려놓는다.


바워크는 우리나라랑 비슷하게 쁠리에-탄쥬-롱드잠-쥬떼 등등의 순서로 나갔다. 한 동작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의 폭풍 질문이 이어진다. 대충 눈치로 때려맞춘 바로는, 한 발로 발란스를 잡을 때 발 안쪽에 힘을 주느냐, 바깥쪽에 힘을 주느냐- 하는 등의 질문이었다. 선생님은 꽤 연세가 있는 분이었는데, 질문 하나하나 다 정성껏 답해주시면서 동작을 체크해주셨다.


가장 충격적인건 센터였다. 센터가 꽤나 복잡했다. 우리나라 센터처럼 그냥 동작 하나 하면서 가로질러가는 그런 센터가 아니라, 중급반정도에서 진행하는 센터같았다. 파세- 아라베스크-턴-발란스-다시 턴-백 험블레 대충 이런 식이랄까.. 센터에서 완전 멘붕와서 (사람들이 워낙 오래 이 클래스를 들어서 그런지, 유연성이 좋지 않아도 센터 순서는 다들 퍼펙트했다) 무너져내림...ㅠㅠ

챠코트 후쿠오카 스튜디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 탈의실이었다. 탈의실이 꽤 크고, 샤워시설까지 완벽했다. 우리나라처럼 그냥 탈의실에서 다 훌렁훌렁 옷 갈아입는게 아니라, 샤워실도 다 개인샤워실이었는데 그 앞에 커튼까지 쳐줘서 옷을 다 샤워실 앞에 뒀다가 갈아입고 나오면 됐다. 다른 사람들한테 민망하게 맨 살을 보이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샤워실은 작았지만, 일본 특유의 통짜로 짜맞춘 듯한 샤워실이라 물때 낄 걱정 안해도 되고 ㅋㅋㅋ 벌레 나올 걱정 안해도 되는 샤워실이었다. 이거 느무 좋았어!


탈의실 안에 또 탈의실이 있어서 옷 갈아입을 사람들은 커튼 치고 갈아입으면 되고, 중간에 큰 의자가 있어 사람들이 앉아서 노닥거리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우리나라 그냥 발레학원들은 탈의실이 작은 경우가 많은데(뉴발란스 우먼스 스튜디오가 그나마 내가 가본 곳중에 탈의실 갑) 너무너무 인상적이었다.


수업을 듣기 전까지 조금 긴장도 되고 걱정도 됐는데, 탈의실에서 영어로 말을 걸어주신 분이 있어서 긴장을 풀고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조금 더 잘하게 되면 더 많은 클래스를 들어봐야지-  


맛있는 것 많고, 사고 싶은 것 많아서 갔던 일본인데 이제는 조금 다른 경험을 쌓고 올 수 있는 나라가 됐다. 현지에서 현지인들과 수업을 듣다보니 내가 그곳에 아주 오래 머물다 온 기분이 든다. 런던에서는 좀 더 많은 수업을 들으려고 하는데, 가기 전까지 좀더 빡씨게! 발레를 해봐야겠다. 토슈즈까지 신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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