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본다는 것
우리는 흔히 병을 말할 때 증상을 먼저 떠올린다.
통제되지 않는 말과 몸의 움직임, 사회적 부적응, 불편함. 투렛 증후군을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속에서 올리버 색스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 사람은 어떤 병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색스가 투렛 증후군 환자들을 설명하는 방식에는 의학적 냉정함보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먼저 깔려 있다.
틱은 분명 그들의 삶을 방해한다.
그러나 색스는 그 방해 속에서도 그들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환자들을 ‘고쳐야 할 존재’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음악을 연주할 때 일에 몰두할 때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놀랍도록 온전해지는 순간들을 기록한다. 마치 인간은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뉘는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조건 속에서 저마다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듯이...
색스에게 치료란 증상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준다. 틱이 사라지지 않아도 세상이 요구하는 ‘정상’에 맞지 않아도 그 삶이 의미 있고 만족스럽다면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태도.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 연민보다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악조건 속에서도 인간은 끝내 자기 방식으로 살아낸다는 사실에 대한 존경.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신경학 책이기 이전에 사람을 읽는 한 인간의 기록이다.
그리고 올리버 색스는 병을 통해 인간을 축소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더 크게 보게 만드는 의사였다.
아마 이 이야기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완전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