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민낯을 마주하다

극복하는 인간, 당신은 '초인'으로 살고 있는가?

by 사유독자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은 타인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자신에게로 침잠하는 것이다.

니체는 이를 '초인(Übermensch)'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초인은 하늘을 나는 영웅이 아니다. 어제의 나를 넘어서고,

자기만의 가치를 세우는 '극복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1. 타인의 가치관이라는 감옥


​우리는 너무나 쉽게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

남들이 좋다는 직업,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방,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도덕.

니체는 이런 삶을 '낙타의 삶'이라 부른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걷지만, 그 짐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주인(타인)이 얹어준 의무일 뿐이다.
​낙타의 삶에 머무는 한, 르상티망은 필연적이다.

내 의지가 아닌 남의 의지로 살고 있기에,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타인이 끝없이 미워질 수밖에 없다.


​2. "나는 원한다"라는 사자의 외침


​낙타의 단계를 지나면 '사자'의 단계가 온다.

사자는 기존의 가치에 "아니요"라고 말할 줄 아는 존재다.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세상의 명령을 깨부수고,

"나는 원한다"라고 선포한다.
​하지만 사자에게도 한계는 있다.

사자는 무언가를 파괴하고 거부할 순 있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는 못한다.

르상티망을 부수고 나온 에너지가 그저 '반항'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또 다른 냉소에 빠질 위험이 있다.


​3. 어린아이처럼, 유희하듯 창조하라


​니체가 말하는 최종 단계는 '어린아이'다.

어린아이는 망각하고, 새롭게 시작한다.

과거의 상처나 타인과의 비교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놀이처럼 즐기며 자신만의 규칙을 만든다.
​초인은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다.
​타인이 "그건 가치 없어"라고 말해도,

내가 "이것은 나에게 중요하다"라고 결정하면 그것이 곧 나의 진리가 된다.
​르상티망이 '남의 불행'을 먹고 자란다면,

초인의 기쁨은 '나의 창조'에서 나온다.

타인이 잘되는 것이 더 이상 나의 가치를 위협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춤을 추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조차 타인의 기준일지 모른다.

니체가 말한 극복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며,

'비교'가 아니라 '발견'이다.


오늘 하루,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나의 내면이 작게 소망하는 단 하나의 일에 집중해 보세요.
그것이 초인으로 가는 가장 작고도 위대한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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