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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깊은 즐거움과 세상의 깊은 필요가 만나는 순간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을 읽고_

by 사유무대


서로가 진짜라고 아우성치는 시대다. 모두가 자신이 가장 진실하다고, 시대에 가장 아파하고 공감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들은 자주 말로만 남는다.


사람은 본래 이기적인 본성을 지녔고, 자기 호기심과 기쁨, 성취를 가장 먼저 챙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맑았던 나의 내적 동기가 어느 순간 외부의 평가, 인정, 성과 중심의 욕망으로 덮이는 순간, ‘가짜’는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건 꼭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독가스 같다. 처음엔 냄새조차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마비된다. 이러한 무감각화 과정은 점진적으로 자신의 본질에서 멀어지며, 그 과정이 미묘하여 자각조차 어렵다는 실존적 위험을 내포한다.


진짜 창작자란, 인간이 얼마나 쉽게 마비될 수 있는 존재인지를 미리 알아차리고, 그 틈조차 만들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그 사람은 바깥에서 보기에 바보나 겁쟁이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진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정한 창조성의 본질을 기술적 숙련이나 산출물의 양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을 지키려는 끊임없는 각성과 저항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동탄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 산책을 간다. 끌리는 책을 꺼내 몇 문장 읽고, 마음에 닿으면 구매한다. 오늘도 그 빽빽한 책장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자기 의미를 위해 살아가는가?’ 하지만 모든 책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건 아니다. 남의 의견을 짜깁기한 책, 트렌드에 맞춰 급히 써낸 책, 자기 치하로 가득한 자서전들. 찬찬히 생각해 보면 동탄 알라딘 서점을 통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나를 감동시켰던 책들은 대부분 이러한 공통점이 있었다.

‘삶과 글의 일치‘

작가의 삶을 완벽하게 검증할 수 없지만 난 느꼈다. 텍스트와 삶이 분리된 책은 공허감을 줄 뿐이지만, 좋은 책은 한 인간이 전 생애에 걸쳐 추구한 한 인간의 광기 어린 호기심과 기쁨의 향연을 선사한다.



『창조적 행위』의 락루빈도 내겐 그런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세상의 요구에 자신을 맞춰 다듬는 것보다, 자신이 가진 본질. 그 원석을 잃지 않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를 되새기게 해 주었다. 성과, 인정, 효율성만이 우선시 되는 시스템 안에서 온전하게 기뻐하며, 시키지 않아도 지속하고, 초연하여 기쁨을 느끼는 어른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느낀다. 무대 위의 마이클 잭슨이 떠오른다. 자기 몸에서 터져 나오는 리듬을 이기지 못하고 흔들리던 그 모습.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기쁨을 ‘행위’로 표현했고, 그 표현이 전 세계가 고통을 잊고 잠시나마 하나가 해주었다. 나의 깊은 즐거움과 세상의 깊은 필요가 만나는 순간이다. ‘We Are The World’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흐른다. 마음의 샘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은 자연스레 흘러넘쳐 세상으로 이어진다. 그 물은, 메마른 사람들의 영혼에 단비 같은 생명수가 된다.




_ 2025년 5월 교육연극연구소 권소정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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