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거울 1화

by 김윤선

어김없이 제시간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하선은 눈을 떴다. 아침 7시 10분.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하선의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5분만 더. 5분만 더. 아니 10분만 더. 일어나서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더 끔찍하게 싫은 건 100KG짜리 납덩어리와 비견될만한 자신의 몸뚱이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출근과 함께 시작되는 반복적이고도 지겨운 일상이 그녀를 기다린다는 사실보다도 더 말이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 하선은 또 한 번 더 힘겹게 욕실로 향한다. 욕실 거울에 이제 막 일어난 하선의 헝클어진 모습이 비친다. 하선은 언젠가는 저 거울을 뜯어버리겠다고 늘 마음을 먹지만 쓸모가 충만한 거울을 쉽게 뜯어내지는 못한다. 아, 저 거울을 언제 뜯어버릴까. 거울을 보면서 하선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70KG, 70KG..

말끔하게 세수를 마친 하선은 거실 한쪽을 묵직하게 차지하고 있는 런닝머신 옆으로 간다.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원대한 목표와 함께 하선의 집으로 들어왔던 런닝머신이 빨래 건조대로 전락하기 시작한 때가 아마도 1년 전쯤일 것이다. 런닝머신 위에 걸쳐진 옷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선 하선은 애써 외면했던 체중계에 시선을 꽂는다. 마치 런닝머신과 한 세트처럼 바닥에서 작은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체중계. 얼마나 오랫동안 체중을 재보지 않았는지 체중계 위에 뽀얀 먼지가 쌓여있다. 하얗게 쌓인 저 먼지 위에 발자국을 내볼까, 말까. 잠시 망설이던 하선은 이내 마음을 거둔다.

“하선씨, 어디 아파? 입술에 립스틱 좀 바르지 그래. 여자라면 립스틱 정도는 바르고 출근해야지. 거 아파 보여서 쓰겠어”

오전 인쇄작업이 끝나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김과장이 하선에게 한 소리다. 2년째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로 인해 실내건 실외건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 소리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해 하루 중 처음으로 마스크를 내렸는데 한다는 첫 말이 저딴 소리라니. 직원이 20명 남짓한 이 작은 회사에서 과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그였지만 정작 나이 차이는 이제 들어온 지 3년 차인 하선과 불과 4살 차이였다. 아, 저놈의 빌어먹을 입을 어떻게 해버릴까.

“아, 마스크 때문에 립스틱이 지워졌나 봐요.”

필터 없이 흘러 내려버려 커피 찌꺼기가 둥둥 떠 있는 원두 커피마냥 김과장의 말들 속엔 찌꺼기가 있다. 하선은 그 찌꺼기들을 모아서 김과장의 입 속에 다시 쳐넣는 상상을 하곤 한다.

‘자고로 여자는 손도 곱고 마음씨도 좀 고분고분한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것습니까?’

‘미쓰리, 오늘 의상 죽이는데? 치마가 좀 더 짧았으면 오늘 더 완벽했을 거야.’

‘와 저 다리에 치마 입고 다니네. 진짜 양심 없다.’

김과장의 머릿속에 필터를 집어넣지 못한 채 세상 밖으로 내보낸 삼신 할매의 실수일까. 회사 안팍의 사람들, 아니 정확히 여자들을 보고 습관적으로 지껄여대는 김과장의 말들이다. 하선은 김과장의 집에 거울이 있기는 한 건지 늘 의문이다. 눈과 이마는 그럭저럭 생겼어도 얼굴의 터줏대감 격인 코의 콧구멍은 왜 그리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인지 보는 사람마다 궁금해지는 얼굴이 바로 김과장의 얼굴이다. 객관적으로 결코 미남이라 할 수 없는 저 인간이 내뱉는 찌꺼기들의 껄끄러움을 하선은 도무지 용인할 수 없다. 하선은 저런 말을 들을 때면 김과장의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마저 비틀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진짜 저 개새끼의 입을 어떻게 해버릴까.

학창 시절 소위 글 좀 쓸 줄 아는 아이였던 하선이 택한 직장은 독립출판물을 출판해주는 인쇄소다. 독립출판을 하고 싶다는 의뢰인의 창작물을 받아서 주문받은 대로 인쇄를 해주면 되는 단순한 일이다. 책과 글을 좋아해서 대학 시절에도 서점 아르바이트만을 고수했던 하선이 국내 대형 출판사의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후 차선책으로 선택한 일이었다. 개인이 써온 시집이나 소설집이 대부분이라 인쇄를 마치면 어엿한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렇기에 하선에게 누가 너는 늘 책을 만지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지 않느냐 라고 한다면 딱히 반박할 수 없는 처지이기는 하다, 하지만 하선은 늘 꿈꿨다. 온전한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책 한 권을 만들어 내기를. 그런 하선이 늘 해왔던 습작 활동을 멈춘 건 아마도 1년 전쯤일 것이다.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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