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_16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 읽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하는 시를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시집 선물하기를 즐겨하고
같은 시를 여러 번 읽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시만이 할 수 있는 언어유희를 재밌어하고
시가 가지고 있는 여백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내 인생도 한 편의 시와 같기를 늘 소망한다.
오늘 읽은 시집의 시 중에서 일기장에 남겨주고 싶은 시는 반칠환 시인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반칠환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오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나를 멈추게 함으로써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나 생각해봤다.
거리에 산책 나온 강아지들, 여기저기 듬성듬성 아무렇게나 피어난 5월의 들꽃들, 엄마의 품에 안긴 아가들,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 하늘을 오색으로 물들이는 노을 녘, 잔잔하게 깨어지는 파도, 양지바른 곳에 드러누워 몸단장을 하는 고양이, 티끌 하나 없이 푸른 하늘, 멋지게 차려입은 덩치 좋은 남자의 걸음걸이, 눈에서 꿀이 떨어질 것 마냥 부둥켜안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연인들, 봄날 새싹의 연두와 밪꽃의 분홍, 여름날의 쨍한 초록.
적다 보니,
일상의 곳곳에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 그 하루를 버티게 해 주고 또 내일을 살아가게 해 준다는 생각이 들어 그 모든 것들에 심심한 감사를 전하고 싶어 졌다.
늘 내 주변에 있어줘서.
어렵지 않게 나의 마음을 잡아주어서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