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건

DAY_37

by 구나공


여보가 차를 쓰는 날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아이를 데리러 가는데

그런 날은 ‘정처 없이 기차여행하는 날’이다.


아이가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곳의 지하철역이

동해남부선과 연결이 되어있어서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와는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꼭 그 기차를 타야 집에 갈 수 있다.


지하철 두 정거장이면 갈 수 있는 집을

기차를 타고 돌고 또 돌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는 것이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아이가 만족할 만큼의 거리를 타고 갔다 다시 타고 돌아와 지하철로 갈아타면 된다.


내겐 그저 킬링타임일 뿐인 그 시간들을 아이는 정말 좋아한다. 그냥 기차가 지나갈 뿐인데도 어찌나 좋아하는지 함박웃음을 띄며 방방 뛴다.


기찻길에 자갈은 왜 있는 건지, 자판기는 왜 있는 건지, 안내방송에선 뭐라 하는지, 저기 써져있는 글은 뭐라고 적혀있는 건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왜 빨간불이 들어오는지, 기찻길은 왜 두 개인지, 이 기차는 어디로 가는 건지, 기차의 색이 왜 다른지..


내겐 그저 익숙한, 그냥 기차역일 뿐인 곳이 모든 게 처음인 아이 눈엔 새롭게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가득한 공간이 된다.


사람들 틈에 끼여 혼자 줄을 서보는 것에 설레어하고 내려야 할 역의 이름이 안내방송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내릴 준비를 해내는 것을 뿌듯해한다. 같은 구간을 수십 번 다녀도 매번 그 기찻길이 그렇게도 신기하고 좋은지 창문 밖만 보고 있어도 즐겁고 좋다 한다.


이따금 그런 아이를 보고 있을 때면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일상에는 ‘처음’이랄 게 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처럼 저렇게 설레어할 일도 웃으며 즐거워할 일도 그다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저렇게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대리만족(?) 감을 느끼는 것이라면 모를까.


‘처음’이란 건 어떤 면에서 조금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즐겁고 흥분되는 말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새롭게 알아가는 기쁨, 무언가 해냈다는 짜릿함이 ‘처음’ 그 순간을 잊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아이도 이제 제법 아는 것도 많아지고 혼자 해낼 수 있는 것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그보다 많은 ‘처음’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처음’은 지금처럼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처음으로 마음을 다쳐 슬퍼할 일도 있을 것이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거나 무서움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 모든 처음들이 잘 지나가기를. 할 수 있다면 오늘처럼, 지금처럼 아이가 기쁘게, 즐겁게 처음을 느껴가기를 바라고 싶다.


혼자 줄 서보기
자판기가 신기한 아이 (사실은 안에 든 과자가 너무 먹고 싶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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