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_36
어릴 때부터 작은 촌에서 자라와서 그런가
나는 호캉스도 좋지만 촌캉스가 더 좋다.
지극히 사적인 이유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첫째, 큰 돈이 들지 않는다.
호캉스는 시작부터가 높은 산을 넘어야 하는 것 같다. 하룻밤 방값이 누구에게나 가벼운 금액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값으로 이미 많은 돈을 지불했음에도 커피 한 잔 값이 밥 한 끼 값이니 호텔에 머무는 시간동은 매 분 돈을 더 써내는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호텔 곳곳에 내가 돈을 쓰게끔 만드는 많은 요소들이 즐비해있기 때문이다.
시골은 돈 쓸 일이 거의 없다. 애당초 커피집이 주변에 없기로서니와(누군가에겐 이게 가장 큰 불편함일 수 있겠으나 카페 대신 집에서 내려 먹는 커피도 충분히 맛있다.) 대게 시골에서 먹게 되는 대부분의 것들이 집 앞이나 동네 텃밭에서 나고 자란 것들이라 공짜다. 게다가 인심 좋은 주인집과 이웃들 덕분에 체크아웃(?)때는 두 손이 무겁게 작물들을 받아 갈 수도 있다.
둘째, 시간이 여유롭다.
호캉스는 체크인 시간이나 체크아웃 시간이 정해져 있는 데다 호텔 안의 서비스들을 다 이용하려면 시간에 맞춰 하루를 움직여줘야 한다. 일상을 살아갈 때에도 도시에 살다 보면 늘 시간에 쫓겨 사는 기분이 드는데 돈값해내겠다는 생각에 가끔은 호텔에선 더 한 기분이다.
시골에선 시계 볼 일이 잘 없다. 해가 뜨면 아침이겠거니, 동네 사람들이 일하다 참 거리를 내놓을 때면 점심 먹을 때인가 싶다. 개구리가 울기 시작하면 저녁이 오겠거니, 밤이 되면 가로등도 몇 없어 잠이 들 수밖에 없다. 제공되는 서비스랄 게 없는지라 확인하고 맞출 시간도 없어서 그 어디보다 멍 때리며 여유롭게 시간을 흘려보내기 딱이다.
셋째,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
호텔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그리 내 일상과 다르지 않다. 평소보다 조금 좋은 식당에서 먹는다는 느낌이 있지만, 별반 다르지 않은 음식이다. 호텔 수영장이라 해서 집 앞 수영장에서 쓰는 물과 다르지 않다.
시골은 시골이어야, 시골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아침 새소리, 저녁 개구리 소리, 흘러가는 물소리, 고양이 소리, 강아지 소리, 온갖 자연의 소리를 공짜로 들을 수 있다. 근처 또랑에서 다슬기를 잡을 수도 있고 조금만 더 나가면 바다에서 꽃게를 잡아 저녁 반찬으로 해 먹을 수도 있다. 동네 나무에 열린 열매들도 철마다 좋은 후식이 되어준다.
넷째, 내가 가진 것의 감사함을 깨달을 수 있다.
호텔에서 지내다 보면 나의 일상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화려하고 잘 갖추어져 있어서 그렇지 못한 나의 공간을 비교하다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게 느껴진다.
시골은 완전히 반대다. 내 일상에선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들이 많다. 근처에 슈퍼가 없어서 당장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몇 리를 걸어 나가거나 차를 이용해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불편한 점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주변에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게 생활의 질을 얼마나 높여주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다. 반찬에 올라오는 작물들의 재배 과정을 보고 있자면 밥알 한 톨 남기기가 미안해진다. 여름 뙤약볕 아래 잡초 캐기는 일상이고 시기에 맞춰 비료를 부워주고 흙을 골라주고 지지대를 받쳐주는 정성을 쏟아야 잎 하나가 더 나고, 열매가 잘 맺힌다. 지난한 그 과정들을 겪어야 비로소 반찬 하나를 더 먹을 수 있다.
다섯째, 함께 사는 삶에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호텔만큼 개인적인 공간이 또 있을까. 물론 사람들 속에 치여 살던 일상을 벗어나 오롯이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이한 곳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곳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시골의 삶은 ‘공동체’ 그 자체이다. 이 집에서 상추를 뽑아 저 집에 보내면 고구마가 담겨 돌아오고, 뒷집에서 감자를 캐 보내오면 앞집에서 식혜가 담아 돌려보낸다. 누구네 집 밭 일이 밀려있다 하면 몇 안 되는 동네 사람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와준다. 일이 끝나고 나면 다 같이 국수를 말아먹고 커피 한 잔을 나눈다. 집 대문은 늘 열려있다. 지나가다 인사하러 들리기도 하고, 힘이 들면 들어와 쉬어가기도 한다. 이런 게 공동체구나. 어쩌면 여느 가족의 모습보다 이들의 삶이 더 가족 같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여섯째, 자연이 있다.
이건 감히 호텔이 아무리 애써 흉내 내려 해도 도저히 해낼 수가 없는, 촌캉스가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 바라보고만 있어도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계절마다 색을 바꾸는 논과 들을 보는 게 즐겁다. 뜨는 해, 지는 해 모두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자라나는 작물들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대견하다는 생각까지 들곤 한다. 시골만이 가지는 냄새도 있다. 소똥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들에 핀 꽃 냄새, 이 집 저 집에서 만드는 밥 냄새, 흙냄새까지. 그 공기의 온도, 바람. 시골에 오면 자연에 둘러싸인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고작 이틀 머물렀을 뿐인데 지난 일주일간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다 털어내고 온 듯한 기분이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 둘 보이는 빌딩을 보니 퍽 답답함이 느껴졌지만 시골에서 채워온 든든한 마음 힘으로 또 일주일을 열심히 살아가 본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적어본 오늘의 글을 마치며 내 눈에 참 예뻤던 시골의 모습들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