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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뗄라 Mar 20. 2019

#9 '갈색 토슈즈' 보신 적 있으신가요?

#9 핑크 발레만 떠올린다면, 지금 당장 이 글을 읽으시오

퇴사를 준비하는 무용과 출신 마케터,

그리고 내 마음대로 끄적이는 문화예술과 무용.


'핑크색' 잘 가, '갈색' 안녕

   강렬한 빨강부터 시크한 검정까지. 세상의 색상은 다양하다. 하지만, 오로지 한 가지 색만 고집했던 것이 있다. 바로 '토슈즈'다. 연한 핑크색, 1820년 처음 토슈즈가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변화도 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핑크색은 하얀 백인 발레리나의 피부색과 유사하여, 발끝이 땅에 닿지 않고 공중을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주었다는데.


      하지만 흑인 발레리나들은 핑크색 토슈즈로 인해 오히려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색은 유난히 밝은 핑크색과 쉽게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흑인 발레리나들은 핑크색 토슈즈를 염색약에 담가 자기 피부색에 맞추는 수고를 했어야 했다.


    실제로 흑인 발레리나 시라 로빈슨은 토슈즈 한 켤레를 어두운 색으로 칠하는 데 보통 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필자 역시 타이즈를 입지 않고, 맨다리로 무대에 올라야 할 때마다 핑크색 토슈즈를 노르스름한 갈색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었다. 맨다리에 핑크색 토슈즈, 그리고 무대 위 조명까지 더해지면 춤보다는 슈즈 자체에 눈길이 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 화장품 가게에서 가장 싼 파운데이션 사서 그 위에 덧칠했었다. 아니면 몸에 바르는 몸분을 칠하거나.


    그러던 2018년 연말, 발레계에 따뜻한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영국 발레 용품 브랜드 '프리드 오브 런던'에서 갈색 토슈즈를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그마치 핑크색 토슈즈가 나온 지 약 200년 만의 일이다. 왜 갈색 토슈즈는 지금에서야 나오게 되었는가. 프리드 오브 런던의 인터뷰에 의하면 발레단에는 백인 발레리나가 훨씬 많았고, 이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갈색의 천 슈즈도 나오지 않았어야 했는데.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나.)


    이와 같은 변화는 미국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이하 ABT)의 수석 발레리나 미스티 코플랜드와 그 외 다수 흑인 발레리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무용계 내 인종차별이 점차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을 의식했을지도 모른다. 여론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니깐.


     버지니아 존슨 할렘 무용극장 예술 감독은 "핑크색 토슈즈는 그 자체로 인종 차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라고 했다. 필자 역시 동감한다. 하얀 피부색에 맞추기 위해 핑크색 토슈즈가 등장했다면, 각 유색 인종 별 토슈즈도 분명 등장했어야 한다. 토슈즈, 이 하나로 그동안 정말 은밀하고 또 치사하게 인종 차별을 한 것이다. 무용을 전공하는 사람들까지 '이게 왜 차별인지' 잘 모를 정도로, 핑크색 토슈즈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자리 잡게 하였으니까.


     드디어 자신의 피부색과 맞는 토슈즈를 신은 발레리나들. 얼마나 좋았을까. 앞서 말한 시라 로빈슨 발레리나는 갈색 토슈즈를 받았을 때 더는 추가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뻤다고 한다.


     이제 갈색 토슈즈를 시작으로 무용계, 특히 발레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인종 차별이 점차 해결되길 바란다. 우리는 그들의 피부색이 아닌 춤이 보고 싶다. 그렇기에 하루빨리 동등한 여건과 환경을 마련되어 보다 마음 편히 자신들의 예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2019. 03월

*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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