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미국 발레에서의 흑인 무용수에 대한 인종차별 연구
퇴사를 준비하는 무용과 출신 마케터,
그리고 내 마음대로 끄적이는 문화예술과 무용.
흑인인종차별은 현대적 의미에서는 주로 백인에 의한 흑인차별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흑인인종차별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링컨의 흑인 해방으로 철폐되었으나 사회적으로는 남부를 중심으로 흑백 차별이 지속되는 현상을 보였다(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과거 미국 사회에서의 흑인은 ‘폭력이나 성적인 방종, 이성의 결여, 예의와 문면의 결여, 도덕성의 결여’와 동의어로 여겨지며 백인과 다른, 열등한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되었다(이지원, 2011).
미국은 흔히 이민자들에게 자유의 땅, 기회의 땅이라고 일컬어지지만 흑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은 말이었다(최협, 2002).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라는 말은 기회의 나라로서 미국을 표상해온 단어지만, 애당초 노예로 끌려왔던 흑인들에게 미국의 정의는 빈번히 완강한 부정의였다(이주원, 1997). 미국의 흑인 화가 조 존스(John Jones)가 그린 <미국의 정의> (1933년)을 통해 이를 단면적을 알아 볼 수 있다. 반라의 흑인여성이 죽어있고 뒤편에 백인들이 모여 있는 이 그림은 미국의 정의가 ‘백인 우월주의’임을 암시하게 한다. 이처럼 같은 ‘미국’이라는 땅을 밟고 살고 있음에도 차별적인 상황에 익숙해져 가는 흑인예술가들은 자신들만의 예술적 표현을 활용하여 민족성을 강조하거나 저항의 개념으로 소재화하였다. 즉, 미국 사회는 흑인에게 있어서 백인과 흑인집단을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으로 분리시키는 이중구조를 띄고 있었다.
이러한 흑인인종차별은 같은 무용계 내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띈다. 현대무용의 경우는 캐서린 던햄(Katherine Dunham), 펄 프리머스(Pearl Primus) 등의 흑인무용수들이 흑인이나 다인종무용단을 이끌면서 흑인의 경험을 주제로 평등을 향한 다채로운 활동을 전개했다(배인혜, 2001). 특히, 엘빈 에일리 무용단은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그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현대무용에서 재능이 있고, 다수의 공연을 할 수 있는 무용수들이 있는 것은 사실 놀랍지 않다. 그러나 백인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발레의 경우에는 흑인들이 쉽사리 접근 할 수 없었다(크리스티 아데어, 1996). 흑인 무용수들에게 가능한 공연과 배역은 제한적이었으며, 이를 주장하는 백인들의 근거는 흑인의 몸으로는 발레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정옥희, 2016). 미학과 결부한 이 주장은 검정색은 추하나, 대조를 이루는 하얀 피부와 노란색 머리 그리고 푸른 눈을 가진 존재는 아름답다고 결론짓게 했다. 이러한 제한은 더더욱 흑인들에게 춤, 발레에 대한 열망의 불을 지피게 했으나, 현실은 냉담했다.
1976년 댄스매거진(Dance Magazine) 7월호에 게재된 ‘흑인과 발레(Blacks and Ballet)’에서 “1920년대와 1930년대 미국 태생의 흑인 아이들이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직업 발레 무용수가 되는 것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흑인들이 수업에 등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라고 서술되어있다. 더군다나 1954년부터 약 6년 동안 몬테 카를로 발레 뤼스 무용단(The Ballet Russe de Monte Carlo)에서 활동한 레이븐 윌킨슨(Raven Wilkinsen)은 입단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미국 남부 지방 순회공연 당시, 어떤 극장에서도 춤을 출 수 없어 호텔 방안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무대 위에서는 검은 피부색을 하얀 분으로 칠하도록 강요받으며 백인 우월주의 비밀 결사단인 KKK단과 종종 대립해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윌킨슨은 결국 발레단을 그만두어야했다(조유현, 2011). 1980년 ABT의 첫 흑인 여성 단원으로 입단한 애나 벤 심스(Anna ben Sims)를 통해 흑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어떠한 요구를 했는지 단면적으로 알 수 있다. 심스는 당시 백인들이 애호하는 용모에 순응하였다. 이는 이후 본고에서 자세히 다룰 자넷 콜린스(Janet Collins)가 온 몸에 흰 색으로 분칠하기를 거부했던 것과 달리 백인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실 이 부분을 통해서 심스를 진정한 흑인 무용수라 칭할 수 없을 수 있지만, 그 부분보다는 실제로 백인들이 흑인 무용수들에게 어떠한 행동을 취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이처럼 흑인 발레 무용수들은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지우고 새로운 모습을 형성해야만 했다. 더불어, 김말복 교수의 한 저서에 기술되어있는 1990년 10월 댄스매거진의 인터뷰 “흑인 무용수는 5번의 피루엣, 두 바퀴 회전을 하더라도 여전히 주역을 맡지 못한다”에서 볼 수 있듯이 기량이 뛰어날지라도 정상의 자리까지 갈 수 없는 현실을 엿볼 수 있다.
물론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에 있어서 발레에 흑인이 가담했음을 증명하는 기록은 분명 적다. 그렇지만, 흑인인종차별에 대한 무용수의 경험과 흑인 발레단의 설립과 관련된 역사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역사는 백인이 갖고 있는 흑인 무용수에 대한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 2014. 02월 학부 논문 中 발췌
[미국 발레에서의 흑인 무용수에 대한 인종차별 연구 - Arthur Michell과 Janet Collins를 중심으로-]
* 필자의 학부 졸업 논문입니다.
* 흑인 무용수 차별에 관한 이야기는 총 5부작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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