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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뗄라 Mar 08. 2019

#4 흑인 무용수에 대한 인종차별과 극복 - 자넷 콜린

#4 미국 발레에서의 흑인 무용수에 대한 인종차별 연구

퇴사를 준비하는 무용과 출신 마케터,
그리고 내 마음대로 끄적이는 문화예술과 무용.


흑인 무용수에 대한 인종차별과 극복 - 자넷 콜린스   

  앞서 다룬 아서 미첼 이전 시기에 흑인 무용수로 활동한 자넷 콜린스(Janet Collins)가 있다. 콜린스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흑인 발레리나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자넷 콜린스 (Janet Collins)     

 

   자넷 콜린스는 1951년부터 1954년까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발레단( Metropolitan Opera Ballet Theatre)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약했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콜린스는 많은 흑인단체로부터 클래식 발레의 장벽 중 하나인 흑인인종차별을 무너뜨렸다고 평가된다(Thomson.G, 2005).


   콜린스는 1917년 3월 2일 루이지애나주 뉴 올리언즈에서 태어났다. 10살이 되던 해, 로스앤젤레스 카톨릭 커뮤니티 센터에서 처음 무용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콜린스의 부모님은 미술에도 재능이 있던 그녀에게 무용보다는 미술 공부를 하기를 원했다(Yael.T, 2011). 그 이유는 무용 그리고 특히 발레에 있어서는 흑인에게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콜린스는 발레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1932년 15살이 된 그녀는 발레 뤼스(Ballet Russes de Monte Carlo)의 오디션에 응했다. 당시 발레 뤼스는 미국 투어 중 로스앤젤레스에서 젊은 무용수를 뽑기 위해 공고문을 내었고, 콜린스는 이에 참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예술 감독으로부터 흑인이라는 이유로 입단을 거절당했다(Brenna.S, 2005). 예술 감독은 콜린스의 재능을 인정했으나, 그녀의 검은 피부색을 흰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유에스 뉴스 엔 워드 리포트(US News & World)의 인용문에서 콜린스는 “색이 아니라 재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콜린스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미국 발레의 세계는 냉담하였다.


   그러던 중 1940년 로스앤젤레스의 뮤지컬 「런 리틀 칠런(Run Little Chillun)」과 「미카도 인 스윙(The Mikado in Swing)」에서 주요 무용수로 활동하였다 (Yael.T, 1997). 이 기회를 통해 캐서린 던햄 댄스 컴퍼니(Katherine Dunham Dance Company)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되었고, 1950년에는 콜 포터(Cole Porter)의 「아웃 오브 디스 월드(Out of This World)」에서 주요 무용수로 활동했다.


   자넷 콜린스는 로스앤젤레스의 라스 팔마스 극장에서 1948년 11월 3일 최초의 흑인 주역 발레리나로써, 첫 공연을 가졌다. 나름의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그녀는 약 3년 뒤, 1951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콜린스는 「아이다(Aida)」「카르멘(Carmen)」등의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34세였다. 이러한 결과는 뛰어난 재능만으로 순순히 얻었다고 볼 수 없다. 자넷 콜린스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용단 무대의 영광을 얻기까지 30년 이상 걸렸으며, 수 년 간의 노력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뒤덮여 있었다. 따라서 흑인예술위원회(Committee for the Negro in the Arts)는 “자넷 콜린스는 미국 문화에 예술가로서의 그리고 흑인들과 그들의 예술가들이 완전한 평등과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데 기여한 공헌을 높이 산다.”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1951년 자넷은 브로드웨이에서 최고의 무용수로 도날드손(Donaldson)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그녀는 한계에 도전하며 1954년까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발레단에 머물렀다. 다양한 작품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자넷 콜린스는 여러 공연과 TV프로그램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이 뿐만 아니라 ‘탈의실’을 통해 그녀의 위대함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다. 시대적인 상황에 맞물려 일반적으로 인종에 따라 사용되는 탈의실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동안 다른 무용수들과 동일한 층에서 탈의실을 사용하였다(Thomson.G, 2005). 흑인 무용수들의 경우 모든 예술 형식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콜린스의 상황은 그 당시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진보적인 체제는 오직 메트로폴리탄 내에서만 이루어졌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부지역에서는 탈의실 시설은 물론, 그녀가 무대에서 다른 백인과 함께 춤을 추는 것에 대해 거부했다. 따라서, 결국 그녀의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채워야만했다(Yael.T, 2011). 그렇지만 자넷 콜린스는 흑인 무용수의 선구자로, 개척자로써 충분하다.


    제프리 홀더(Geoffrey Holder)의 한 인터뷰에 의하면 “그녀만의 방식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프리마 발레리나가 된 것은 모두에게 희망을 주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그녀는 흑인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그녀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뉴욕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많은 비평가들은 콜린스의 뛰어난 무용 실력에 경의를 표했다. 무용비평가 존 마틴(John Martin)은 “그녀의 존재와 움직임은 살아있는 느낌이다.”라고 서술하였다. 또한, “그녀는 모든 것을 포용하지 않았지만, 관객을 위해서 완전하게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과시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직 의사소통을 위해 유지하고자 한다.”라고 덧붙였다. 저명한 비평가의 찬사와 표창은 또 다른 전문가들에게 전파되었고, 그들 또한 그녀의 재능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비평가들의 공통된 요점은 ‘시선을 사로잡는 정신적 활력’ 이었다.


   1954년 은퇴 이후, 자넷 콜린스는 장애인 재활에 초점을 맞춰 발레를 활용하였다. 청각 장애 아동을 위한 발레를 통해 또 한 번의 혁명을 일으키고 새로운 개척자로서의 여행을 계속했다. 또한, 자신의 무용단을 이끌면서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아메리칸 발레학교를 포함한 여러 학교에서 지도자의 역할도 수행했다(Jennifer.D, 2003). 물론, 1970년대 초반부터 계속해서 2003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작품 안무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콜린스는 흑인들에게, 특히 어린 여자 무용수들에게 꿈을 심어주었으며, 2003년 5월 23일 텍사스 주 포트 워스에서 86세에 생을 마감했다.


  #1에서 이야기한 미스티 코플랜드와 자넷 콜린스의 은퇴의 역사적 업적 사이에는 60년의 세월이 걸렸다. 인종차별에 대한 미국 발레에서의 자넷 콜린스의 발자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권위 있는 무대에서 흑인들, 자신들의 몸의 움직임을 예술의 한 형태로 받아주길 희망하는 젊은 흑인 무용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실제로 2011년에는 자넷 콜린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전기를, 2013년에는 타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콜린스의 다큐멘터리 집행자이자 그녀의 오랜 친구인 로베릍 헤인즈(Roberta Haynes)는 “자넷 콜린스는 파블로바(Pavlova)와 같은 발레리나가 되는 꿈을 꾸었다. 물론, 당시에도 보드빌, 뮤지컬과 영화에서 흑인 배우나 무용수가 있었지만, 클래식 무대에서 흑인 발레리나는 전혀 없었다. 이것은 완벽한 인종 차별의 시기였음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심지어 레나 혼(Lena Horne), 로빈슨(Robinson)과 같은 가장 유명한 흑인 스타들조차도 백인 테이블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 할 수 없었다.” 라고 콜린스이 실제로 겪은 시대적 상황을 묘사했다. 이에 덧붙여 “자넷 콜린스와 같은 선구자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녀는 미국에서 인종 차별을 선고 받은 기간 동안 새로운 신호였다. 그녀는 무용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주요 발레단에서 흑인 여성 발레리나를 찾는 것은 드물다. 우리는 결코 그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몇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넷 콜린스의 업적과 그녀를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콜린스가 행한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 2014. 02월 학부 논문 中 발췌

[미국 발레에서의 흑인 무용수에 대한 인종차별 연구 - Arthur Michell과 Janet Collins를 중심으로-]


* 필자의 학부 졸업 논문입니다.

* 흑인 무용수 차별에 관한 이야기는 총 5부작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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