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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뗄라 Mar 11. 2019

#5 미국 발레에서 흑인 무용수 지위 향상에 기여한 점

#5 미국 발레에서의 흑인 무용수에 대한 인종차별 연구

퇴사를 준비하는 무용과 출신 마케터,
그리고 내 마음대로 끄적이는 문화예술과 무용.


미국 발레에서 흑인 무용수 지위 향상에 기여한 점 

  아서 미첼과 자넷 콜린스는 미국 사회에서 초기 흑인 무용수로 엄청난 업적을 이뤘고, 이에 대한 재능이나 수고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미국은 평등한 기준과 잣대로 흑인들의 재능과 능력을 완전히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시간은 클래식 발레의 세계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17세기 후반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시작된 발레는 일반적으로 흑인의 몸이 고전 기술의 라인과 적합하지 않음을 주장하며, 흑인인종차별을 통해 20세기 동안 흑인이 양질의 교육과 전문 직업으로 갖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선구자인 아서 미첼과 자넷 콜린스는 인종차별에 직면하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경력을 쌓았다.


   흑인 발레 무용수들을 위한 공간을 만든 아서 미첼을 통해 레이븐 윌킨스과 같은 전문 발레 무용수가 등장하였고, 미국 최초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흑인 발레단으로써 미약하게나마 고전 발레에 대한 흑인인종차별을 대항하였다(The New york Times, 2015). 할렘무용단을 통해 「백조의 호수(Swan Lake)」, 「지젤(Giselle)」과 같은 작품에서 흑인 무용수들이 춤출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또한, 작품에서 흑인 무용수들의 수를 제한하지 않았다. 특히, 할렘무용단을 통해 흑인 여성 무용수 중 일부가 주요 고전 발레단에 입단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The New york Times, 2007). 발레 움직임은 만국 공통이어야 하고, 흑인도 피부색과 상관없이 발레를 아름답게 출 수 있다는 아서 미첼의 신념이 발현된 결과이다. 이는 흑인의 신체적, 문화적 뿌리를 부인하지 않고 재즈 무용의 엉덩이나 어깨 움직임, 거리 춤에서나 볼 수 있는 폭발적인 에너지 같은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발레와 접목시켰기에 가능했다(석영진, 2011).


   또한, 자넷 콜린스도 흑인인종차별에 반대하여 반복적으로 고군분투했다. 다행히 그녀의 노력으로 인해 메트로폴리탄 발레단에서는 흑색 무용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 수 있었다. 이렇게 콜린스는 흑인인종차별을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척자로써의 역할을 다했다. 이후 콜린스가 무대를 은퇴한 다음, 미국 내 많은 흑인 무용수가 성공한 경력을 쌓았으며, 이로써 다른 사람들이 따라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아직까지도 그녀의 공을 높이 사는 평가가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콜린스의 기회는 획기적이었고, 미스티 코플랜드를 포함한 새로운 세대의 무용수에게 영감을 불어 넣었다(Victoria.U, 2017).


   1989년에는 100인의 흑인 여성 연합(National Coalition of Women)으로부터 캔댄스 상(Candace Award)을 받았으며, 2007년에는 자넷 콜린스의 큰 업적과 헌신을 인정하고 존경하기 위해 자넷 콜린스 펠로우십(Janet Collins Fellowship)이 설립되었다. 또한, 미스티 코플랜드는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자넷 콜린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으며, 1950년대 미국의 고전 발레에서 눈에 띄는 소수의 흑인 여성 중 한 명이었으며 한 세대를 고무시키고 더 평등 한 사회에 희망을 안겨주었다고 평가되고 있다(Chelsea.T, 2014). 이러한 사실을 조합하여 볼 때, 자넷 콜린스는 미국 발레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적으로 흑인에 대한 지위를 향상시켰고 흑인들 또한 이를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까지도 미묘하게 배제되고 있는 흑인무용수이 그나마 주요 발레단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1950년대 완벽히 분리된 흑인인종차별에 대하여 노력한 아서 미첼과 자넷 콜린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 발레에서의 흑인인종차별과 이러한 고정관념이 흑인무용수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1950년대 초기 흑인무용수인 아서 미첼과 자넷 콜린스를 중심으로 백인우월주의자들로부터 흑인인종차별을 극복하려는 시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 통해 그들의 업적을 다시 살펴보면서 현재 흑인 무용수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한 점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우선, 흑인무용수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적 시각을 알아보기 위해 무용계 안에서의 흑인인종차별이라는 개념과 그 안에 놓여있는 흑인의 위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미국사회에서는 발레가 점차 보편화되어 갔음에도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발레학교에서 흑인학생을 받지 않았다. 이후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서나 다인종 혹은 흑인발레단이 등장하였고, 이마저도 사회적 압력과 저항 속에서도 힘들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서 미첼의 경우, 최초로 주요 발레단 중의 하나인 뉴욕시티발레단에서 주역무용수로 활동하며 인종적 장벽을 더욱 낮추고자 노력했다. 더 나아가, 마틴 루터 킹 목사 사건 이후 할렘으로 돌아와 할렘무용학교와 무용단을 설립해 흑인무용수의 진출을 격려하고 확산시키려 노력했다. 또한 자넷 콜린스는 15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백인 분장에 대해 강력한 거부의사를 밝히며, 흑인인종차별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에 자신의 뛰어난 기량을 일부 인정받았다. 이렇게 두 무용수는 현재 흑인무용수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며, 미국 발레에서 심각했던 흑인인종차별을 바꾸는 전환점의 역할을 하였다.


   두 무용수가 미국 발레에서 흑인 무용수의 지위향상에 기여한 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무대에 설 기회가 적었던 흑인 무용수들에게 무용학교와 무용단을 설립해 환경을 제공해주고, 이후 이는 스스로 다른 발레단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으로 활용되었다. 또한 흑인무용수에 대한 정체성 확립을 위해 다양한 역할과 이미지를 작품 속에서 제공하였으며, 무용수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흑인인종차별에 대한 반발심을 드러내었다. (자넷 콜린스가 백색으로 온 몸을 분칠하기를 거부한 것을 의미한다.)


   이상 종합해보면, 미국 발레에 나타난 흑인인종차별에 초점을 맞추어 흑인무용수에 대한 인종장벽과 그 극복을 위한 흑인무용수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미국 발레에서의 공헌을 비추어 볼 때, 아서 미첼과 자넷 콜린스는 지금까지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흑인무용수들의 입지와 지위를 미약하게나마 향상시켰다고 볼 수 있다. 미국사회에서 미스티 코플랜드의 부각을 계기로 미국 발레에서 소외된 흑인 무용수에 대한 각성할 수 있는 시간이 된 만큼 초기 무용수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2014. 02월 학부 논문 中 발췌

[미국 발레에서의 흑인 무용수에 대한 인종차별 연구 - Arthur Michell과 Janet Collins를 중심으로-]


* 필자의 학부 졸업 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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