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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뗄라 Mar 15. 2019

#7 시대적 흐름의 변천에 따른 발레 작품 <지젤>

#7 더이상 사랑에 목매는 지젤이 아냐

퇴사를 준비하는 무용과 출신 마케터,

그리고 내 마음대로 끄적이는 문화예술과 무용.


낭만 발레 <지젤>, 그리고 여성 무용수 캐릭터

   호두까기 인형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그리고 지젤. 지젤은 대표적인 낭만주의 발레 작품으로 오랜 시간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아 왔다.


   총 2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지젤은, 시골 처녀 지젤과 귀족 출신의 알브레히트 그리고 지젤을 사랑하는 시골 청년 힐라리온의 전형적인 삼각관계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특히,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과 지젤을 사랑한 힐라리온의 애증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1막에서 지젤은 알브레히트의 배신에 상처를 받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지젤은 처녀 귀신 윌리들로부터 알브레히트를 구한다. 이처럼 낭만주의 시대의 지젤은 현실적이기보다는 환상과 신비의 가치를 추구해, 여성의 숭고한 사랑과 같은 서정적인 내용을 담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1막에서 알브레히트의 약혼자와 지젤을 통해 당시 사회적 계급, 즉 귀족과 평민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귀족 출신의 알브레히트와 그의 약혼자가 등장하여 지젤이 충격에 빠지게 되고, 이로써 죽음으로 가게 되었다.)

   2막에서는 지젤은 지상을 떠도는 혼 윌리가 되어 알브레히트와 불멸의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지젤의 사랑과 인내를 통해 알브레히트는 윌리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고 현세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지금까지도 지젤을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비현실적인 스토리 구성이지만, 분위기 자체는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낭만주의의 지젤은 여성의 숭고미, 나약함, 순종적인 모습을 극대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단편적으로 지젤을 통해 여성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저항이나 모색 방안을 찾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히려 주체를 상실한 여성상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계급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중심적 테마로 사용하는 연출은 계급 차별과 노동자 계급 여자가 귀족 남자에게 착취되고 있는 성차별을 엿보여준다.


   이처럼 로맨틱한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은 소극적이고 연약한 여성상을 보여주지만, 당시 사회적 풍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현시대의 여성상을 반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다.



1982년 스웨덴 쿨베리 발레단 -  마츠 에크 안무


    마츠 에크의 지젤은 실존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실존주의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사상이자 예술 경향이다. 마츠 에크는 클래식 발레 지젤을 현대 발레로 재해석하여, 연극적인 풍자와 해학을 혼합하였다.

     마츠 에크의 지젤은 조금 모자란 소녀로 소개된다. 첫 등장부터 맨발에 나무토막처럼 굳은 몸으로 구르기를 반복해, 배신의 아픔을 표현한다. 이후 지젤은 정신 병원으로 가게 되고, 주위에는 오직 동료 정신 병원 환자들만 남아 있다. 반면 알브레히트는 자신의 모든 행동에 용서를 빌게 되는데, 이를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모습으로 표현한다. (즉, 전라의 상태로 춤을 춘다.) 이처럼 마츠 에크의 지젤은 무용수들의 색다른 움직임과 거친 표현이 특징적이다.


     19세기 낭만 발레 지젤에서 두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이야기 전개되었다면, 20세기에서는 지나친 사랑, 스토킹이 된다. 다시 말해 알브레히트를 사랑하는 지젤의 모습은 정상인이 아닌 스토커, 비정상인의 모습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마츠 에크의 지젤은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젤이라는 여성만 놓고 보았을 때는 19세기 지젤에서처럼 남성 앞에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오히려 주체성 없는 여성의 모습을 각인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2008년 서울 발레시어터 -  제임스 전 안무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 대신 격정적인 베드신이 펼쳐지는 제임스 전의 지젤. 제임스 전의 지젤에서는 지젤과 알브레히트가 이복 남매라는 운명을 지고 태어나고, 지젤은 알브레히트가 떠난 이후, 그의 아이를 출산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한 지젤은 한 인간으로, 나약한 여자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죽음 대신 알브레히트의 딸을 출산하며 미혼모로, 또 생활을 위해 유곽의 한 여인으로 삶을 살아간다. 이를 통해 아이를 위하는 어머니, 즉 모성애를 자극하고 본인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한 인간으로 표현된다. (유곽의 여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취적인 여성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랑 때문에 삶을 포기하지 않는 점에서 평한 것이다.)


      더불어 처녀 귀신이 등장하는 2막의 경우, 다수의 유곽 여인들이 등장한다. 해당 부분은 미혼모에 대한 대한민국의 편견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보수적인 시선을 담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이라고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왜 하필 "유곽"을 통해 미혼모를 드러내고자 했는가이다. 사실 미혼모라 하여 자신의 성을 상품화하고, 판매하는 직업을 택하지 않는다. 차라리 편의점이나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이 더 현실적이지 않나.


       아울러 유곽에서 일하는 분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줄 만큼 사회는 너그럽지 못하다. 예를 들어 옐로하우스 보조금 문제가 시끄러운 이유처럼 말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면, 진짜 현실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법했다. (이복 남매의 사랑 역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사기보다는, 눈살이 찌푸러지는 설정이 아닐는지)

    

       그럼에도 제임스 전의 지젤은 숭고미가 아닌 나름의 현실성을 강조하고자 노력했다. 당시 사회적 상황을 미루어 짐작컨대, 2004년 성매매 특별 단속법 시행과 2008년 호주제 폐지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들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세 지젤 작품은 각각 다른 스토리 구성으로 작품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물론 알브레히트와 지젤이 서로 사랑하는 스토리나, 힐라리온의 등장, 아돌프 아당이 작곡한 음악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무용수의 움직임이나 내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의 이미지나 역할 등 전반적인 관점이 변화하고 있다. 이는 모든 문화예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상호 작용의 과정에 놓여 있다. 개인적으로 앞서 살펴본 세 지젤의 작품은 '사랑'이라는 배경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사실상 여성은 더 이상 사랑에 얽매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자신의 삶을 보다 주체적이고 현대적으로 이끄는 여성상을 지닌 새로운 지젤이 등장하길 바란다.


     


■ 참고문헌 및 자료

1. 시대적 맥락으로 본 발레 < 지젤 >의 변화 양상 -장 코랄리,쥘 페로의 < 지젤 >, 마츠 에크의 < 지젤 >, 제임스전의 < 지젤 >, 한국체육대학교 체육과학연구소, <스포츠사이언스> 31권1호(2013), p.105-111, 제임스전     

2. 서울발레시어터에 나타난 여주인공의 페미니즘적 해석, 한양대학교 우리춤연구소, 우리춤과 과학기술 제 15집(2011년 8월),p.59-79,김지연     

3. 페미니즘 이론, 문예출판사, 1993년, 조세핀 도노번, 김익두·이월영 역     

4.예술과 문화의 사회, 고려대학교출판부, 2003년, 부르디외 저,  현택수 역



- 2019. 03월

*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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