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이 되고 싶었던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서른 셋 나이에 처음으로 중국에 나가서 살게 되기 전까지는. 행복했던 기억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경시반을 했고, 중학교 때부터 제대로 치열한 입시 지옥에 뛰어들었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교에 남아 경시반 공부를 했다. 경시반 공부가 끝나면, 경시반 친구들의 어머니들 차가 학교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러면 그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온다. 집으로 돌아오면 또 과외를 시작했다. 과학 경시반이었기 때문에 또 문과적은 부분도 보충하기 위해, 영어 과외를 했다.
100%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고등학교에 갔어도 변함은 없었다. 방과후 수업은 이어졌고, 기숙사는 저녁 시간부터 11 반시까지 촘촘하게 시간별 자습 시간이 설정되어 있었다. 1시간마다 10분씩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나마 9시에는 20분 쉬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근처 매점을 가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집에 갈 수 있었다. 당시 동창 중 아버지가 철물점을 하시는 분이 계셔서, 각종 짐 같은 것들을 트럭에 실어주시곤 했다.
방학엔 1주일 정도 집에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는 다음 학기에 배울 정석 책을 다시 한 번 리뷰하는 과외를 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처음 들어서 못 따라가는 일이 있으면 안 됐다. 학교 수업은 배운 걸 복습하는 시간이지, 새로운 걸 배우는 시간이면 안 됐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시험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려는 아이들의 성적이 80점 대인 경우는 애초에 없다. 익숙함의 차이로 실수하는 한 두 문제가 생기게 되고, 그 한 두 문제 차이로 등수도 희노애락도 갈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제목인데, 그 때 유행했던 '과학고의 작은 거인들'이라는 책이 있었다. 그걸 또 읽었다. 그리고 동조됐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 갇혀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큰 포텐셜을 가진 거인들의 이야기. 지금 생각하면 다소 과한 감이 있는 거인이라는 호칭이 그 때는 괜히 있어 보였다. 스트레스를 받지만, 보람을 느끼며 세상이 만들어 놓은 구조적인 경쟁에서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10대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미화시킨 글을 보며 감화를 받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