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되든 괜찮다고 말해준 빛
어쩌면 그 때, 어린 나의 감은 맞았던 것일 수도 있다. 신학 대학에 가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했고, 다니던 목사님과 담임 선생님께 상담도 받았다.
원래 열혈 신도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억지로 끌려 가는 정도로 교회를 가긴 했지만, 그 어린 시절에 뭘 알아서 다녔나 싶다. 그냥 주기도문 외우고, 선생님이 '말 잘 들어야 하느님이 기뻐하신다'라는, 하느님인지 그냥 어른들이 하는 얘긴지 구별 안 되는 얘기를 들은 기억 뿐이다. 재미에 비해서,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고통은 너무나 컸다.
중학교 때는 공부하느라고 교회 다닐 시간도 없었다. 사실 그렇다고 일주일에 정말 그 몇 시간 투자할 시간조차 없었느냐 라고 물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어차피 낭비했을 수도 있는 시간인데, 이상하게 그 때는 그렇게 그 교회가는 시간이 불안했다.
고등학교 때도 이어졌다. 첫 1년은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내가 교회에 가면 그 시간 동안 남들은 일요일 오전의 황금 같은 시간에 공부를 할텐데, 하는 불안감에 교회를 다닐 수 없었다. 그런데, 부모님과 처음 떨어져서 예민한 과학고생들의 기숙사에서 생존하는 것이, 꽤나 힘들었나보다. 그 작은 사회 생활도 힘들었고, 성적이 뜻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 것도 힘들었다. 첫 중간고사 생물 점수가 70점대로 나왔을 때는 미쳐 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교회에 가봤다. 그 때는 나에게 어떤 위로를 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지 못했다. 그냥 '시험에서 아는 것 덤벙대서 틀리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려고 갔다. 그런데 교회에서의 가르침은 참으로 뜻밖의 것이었다.
- 시험 성적이 잘 나오지 않더라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뜻입니다.
물론 그 전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내용으로, 기도만 해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설교도 있으셨다. 그 말씀까지만 해도, 마치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내가 잘못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뒷 말씀에 큰 위로를 받았다. 시험을 못 봐도, 심지어 시험을 잘 못 봐서 좋은 학교를 가지 못해도, 하나님은 뭔가 다 너를 위해 준비한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그 내용을 증명이라도 하듯, 당시 교회에서는 '기대'라는 찬송가를 자주 불렀다.
-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나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
내가 할 일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정해주시는 것이며, 난 그걸 열심히는 하되, 너무 스스로 아둥 바둥하지 말고 믿고 의지하면 된다는 내용으로 해석됐다. 그 후부터 마음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 시험 문제를 좀 더 틀려도, 완전히 행복한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주 조금은 더 편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은 기독교에 기대서, 버틸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