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미덕
현대인들은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다. SNS로, 메신저로, 전화와 문자로, 심지어 통화 품질 좋은 영상 통화로. 연락하는 방법이 쉽다보니, 빈도수는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오죽하면 인사가 '연락 자주 하자'다. 연락이 소원했던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이라도 전해오면 '연락도 없던 놈이'라고 한다.
또 예전보다는 먹고살만해졌다. 토요일도 일하던, 경주마 같은 부지런함이 미덕이던 시절에는, 고기 반찬이 정말 특별한 날에만 먹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건강 찾아 더 이상 고기 그만 먹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워라밸이 더 좋은 세상이 오자, 시간이 남는다. 그런데 남는 시간을 즐거운 일에 쓰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별다른 취미나, 여유를 즐기는 방법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소중한 자유 시간은 심심한 시간이 된다.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는데, 시간은 남는다. 그러다보니, 남일에 관심이 많아지고, 서로 하고 싶은 말도 많아진다. 내 생각대로 살지 않는 지인을 보면 그게 그렇게 이해가 안 가는 가보다.
- 취업은 했니? (요즘 취업 힘들다던데 눈 낮춰서라도 무슨 일이든 하지 그러니?)
- 너 몇 년차지? (승진할 때 된 것 같은데, 혹시 회사에서 인정 못 받니?)
- 결혼은 했니? (너 겉으로 봐서는 멀쩡해 보이는데, 뭐가 문제니?)
- 애기는 낳았니? (혹시 잘 안생기니?)
- 둘째는 낳았니? (혼자 자란 애들 외로운거 모르니?)
질문 듣는 사람은 맘 편할리 없는 질문 폭격들이 이어진다. 배려와 예의 없는 질문들을 듣지만, 표정 관리는 잘 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런 질문 삼가달라고 반색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다. 그 질문 내용에 대해 불편한 내용이 있나보다하고 억측을 한다. 쟤 결혼했냐고만 물었는데, 엄청 오바하더라, 뭐 잘 안 되고 있나봐. 이런 식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말은 미덕을 설명하기 위해 생긴 말은 아니었다. 잘 들어두면 좋을 남의 조언을 유심히 귀 담아 듣지 않는 사람들을 핀잔하기 위해 생긴 말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말이 미덕이 되어야할 것 같다. 남의 말들을 다 듣고 담으면, 본인이 버틸 수 없는 수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변화시키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위대한 사람들은 남이 틀린 말 하면 싸워 이겨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사는 게 피곤하고 힘겨운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그냥 다른 사람들을 귀담아 듣지 말고 영혼없는 끄덕임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만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세상에는 너무 많은 쓸데없는 조언자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