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의 권리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인생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선배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자주 하는 말은 아마도 '그러다 후회한다'일 것이다. 나이가 많아서든, 인생의 굴곡을 더 겪어서든, 더 많은 경험을 해봐서든, 남일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화법이다.

- 지금은 마냥 좋은 것 같지? 그러다 후회한다.
-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말 들어.

우선 감사하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었을 때, 그릇된 선택을 하고 있는 상대를 차마 그냥 볼 수 없어서 하는 조언일 테니까.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직간접적 경험이 마치 빅데이터라도 되는 양, 일반화를 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어도 이상하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꽤 내 의견에 확신이 있을 때, 남의 조언이 별로 필요 없을 때, 아니면 좀 불안해도 마음이 동할 때. 그럴 때는 솔로몬 할아버지의 지혜를 들이 밀어도 소용 없다. 솔직히 '댁도 그렇게 사시지 그러셨어요?'라는 질문만 목까지 차오른다.

나도 남들이 봤을 때 후회할만한 선택을 많이 해 왔다. 왜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냐, 더 작은 회사를 가려고 하냐, 벌써 이직하려고 하냐 등등. 어릴 때는 그런 말 들어도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모든 내 선택에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확신에 찼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에 한 선택에 대해서 조금의 후회도 없느냐라고 했을 때,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떤 선택에 있어서는, 그 때 남들 말을 들었으면 더 좋았겠구나 하는 경험이 생긴다. 시간이 지날 수록 많은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실패의 횟수도 늘어나는 것은 확률적으로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그런 후회조차도 내 경험이 되고, 내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내탓만 하면 된다. 내 뜻대로 했다가 하는 후회는 내 어리석음만 탓하면 되지만, 남 말 들었다가 하는 후회는 그 사람과 나의 줏대 없음도 탓해야 해서 더 복잡해진다.

인생은 어차피 고난과 선택의 연속이고, 그러므로 후회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하게 될 후회에 대해서 억울하지 않게 내가 책임지고, 적어도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싶다. 인생을 너무 무겁지 않게, 즐거운 여행 정도로 생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누가 데리고 다녀서 따라다니기만하는 여행이 아닌,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가 설계해서 다니는 주체적이고 즐거운 여행을 다니고 싶다. 그러다보면 중간에 길도 몇 번 잘못 들고, 어떨 때는 돌이킬 수 없는 길도 건너게 되지 않을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그건 인생이 아닐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