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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철단골 Sep 28. 2019

유언

내가 필요했던 말

외할머니와의 인사 기회는 한 번 뿐이었다. 그래도 오래 계시면 더 뵐 수 있으려나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못했다. 귀국 후 처음 뵌 후에, 그래도 한 두 번 더 인사드리고 싶다는 건 욕심이었다. 인생은 늘 그랬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건 조금 덜, 하기 싫은 건 조금 더 하게 된다. 내 맘에 쏙 드는 상황은 없는 것 같다.


할머니가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는 많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빈소에 찾아가서, 눈이 그렁그렁하게 울고 계신 이모들을 보고 나서야, 실감이 확 났다. 외가는 딸 다섯에 아들 하나인데, 딸 넷과 (한 분은 미국에 계시다) 숙모가 상복을 입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간다고 했다.


- 가면 눈물 날꺼야. 이거 챙겨.


숙모는 시크하게 휴지 몇 장을 나와 아내에게 쥐어주었다. 할머니를 모신 장소로 이동할 때만해도 딸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할머니 얼굴 보면 바로 눈물이 터질 것처럼.


어떤 방에 들어가서, 할머니를 뵈었다. 할머니는 표정이 편안해 보이셨고, 머리는 뒤로 넘긴 채, 창백한 얼굴에 핑크색 섀도우와 립스틱을 바르고 계셨다. 할머니의 인생처럼 곧게 정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셨다. 돌아가셨다는 실감이 나는건 축 늘어진 팔이었다. 할머니를 보자마자 이모들과 엄마는 오열을 했다. 아내도 있었고, 사촌들도 있었어서, 참고 참아야 된다고, 엄청 마음 속으로 되뇌었지만, 결국 눈물을 참지는 못했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예배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영정을 모신 곳에 삼삼오오 교회 분들이 모이시더니, 찬송가를 부르시기 시작했다. 찬송가 몇 차례가 끝난 후, 손주들에게 앞으로 와서 앉으라고 했고, 목사님 말씀이 시작됐다. 할머니는 매우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을 일화와 함께 설며해주셨다.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가르키시며 질문하셨다.


- 권사님께서 여러분께 어떤 말씀을 드리고 싶으신 것 같으세요?


속으로만 생각했다. 너무 슬퍼 말아라, 나는 즐거운 인생이었다, 너희가 행복하길 바란다.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으라는 것이 권사님의 유언이십니다.


지금 내게 필요한 얘기를 할머니가 해주신 것이 감사하고 반가웠다. 불행할 일이 없는데, 불행으로 스스로를 몰아 넣고, 감사할 일이 많은데, 불평만 하고 살았다. 심지어 이런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정신승리라고 치부하기도 했었다. 그 말씀을 듣고 나자, 정신승리가 정신실패보단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배하는 내내 뒤에서 계속 오열했다. 어머니를 떠나 보낸 딸의 마음이 느껴져서 내내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손님들도 계신데 차마 울 수가 없어서 참고 또 참았다. 예배가 끝나고 식사를 하려는데, 엄마는 할머니 사진을 보며 '엄마가 맛있게 먹으라고 하는 것 같네'라고 했고, 나는 눈물이 나서 잠깐 자리를 피해 하늘을 봤다.


할머니는 살아 생전에 해주신 것도 많으시지만, 떠나시면서도 내게 많은 것을 주셨다. 남은 삶 속에서,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마다, 할머니를 떠올리겠노라 생각했다.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 남을 미워할 때,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 할머니를 떠올리면, 하늘에서 내게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실 것 같다.


- 손주야,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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