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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두세술 Jan 19. 2018

감독 김종관

#1 장면의 영화


출처 < 다음 >, 김종관 감독

  김종관의 영화는 인생의 한 장면, 그중에서도 사랑의 단면을 떼어와 그리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영화들은 기승전결을 통해 상황을 설명하고 관객을 상황에 몰입시킨다. 즉, 상황을 통해 감정의 동화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김종관의 영화는 다르다. 그의 영화는 기승전결은 물론 앞 상황조차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관객에게 하나의 장면을 내던지고, 인물의 감정을 느껴보라 말한다. 인물의 감정을 통해 상황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많은 단편영화를 작업하던 그의 습관인데, 최소한의 배우와 예산으로 미니멀한 영화를 만들다 보니 하나의 상황만으로 영화를 이끄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예로,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6분이라는 시간 동안 배우의 표정과 흔들리는 카메라, 영화의 공기만으로 짝사랑의 떨림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모놀로그#1>은 이별 후 바닷가를 찾은 여자의 감정을, <올가을의 트렌드>는 첫 데이트의 감정과 생각들을 재치 있게 담고 있다.


 또한 그는 로맨틱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죽음, 또는 어떠한 큰 사건들을 다루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스펙터클한 ‘사건’을 담는 것이 아닌, 일상의 ‘상황’을 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겪을 법한 사랑의 시작, 갈등, 이별, 그 속에서의 그들의 관계가 영화의 주된 소재가 된다. 이러한 특징은 장편영화에서 역시 나타난다. 그의 첫 장편영화인 <조금만 더 가까이>는 옴니버스 구성으로 다섯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아니, 사랑의 장면을 그린다. 이 영화에선 사랑의 시작, 이별, 이별 후 구차하게 매달리는 모습, 사라져버린 사랑, 사랑에 지친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이 한 사랑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각기 다른 커플을 통해, 각기 다른 상황을 통해 그려내는 것이다. <더 테이블> 역시 네 개의 관계 이야기를 묶어 옴니버스로 구성했다. 스타가 된 여자와 그녀의 전 남자친구, 하룻밤을 함께한 후 재회한 남녀, 결혼 사기를 위해 만난 두 여자, 결혼을 앞두고 전 애인에게 흔들리는 남녀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더 테이블>만의 특징이 있다면, 카페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카페의 한 테이블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이 영화의 전부이며, 조금 나아가봤자 카페 앞 길거리를 비추는 것이 전부다. 이로써 김종관은 한정된 공간 속 대화만으로 영화를 진행하며 인물의 움직임마저 덜어냈다. 이제 그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이미 사소한 소재를 다루며 공간과 인물을 줄여왔지만, <더 테이블>로 인해 그의 영화는 더욱 최소화되었다.


 공간과 인물, 상황 설명조차 최소화한 그의 영화를 통해, 관객은 무엇을 느낄 수 있으며 무엇을 공감할 수 있을까? 그의 영화는 모든 것이 과도하게 생략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그들이 어떠한 사람인지, 어떠한 상황인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느낄 수 있다. 김종관에게 ‘대화’가 담긴 하나의 장면은 인물의 삶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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