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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두세술 Jan 21. 2018

감독 김종관

#2 거짓과 진심의 이야기

<최악의 하루>의 거짓과 진심

 <최악의 하루>는 김종관의 다른 장편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조금만 더 가까이>는 사랑으로 묶을 수 있는 이야기였으며 <더 테이블>은 테이블 앞에서의 이야기로 묶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서로 다른 관계가 여럿 그려짐으로 인해, 주인공이 불분명했으며 각각의 이야기들은 완벽하게 묶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악의 하루>는 ‘은희’의 최악의 하루이다. 단편의 조각을 모아놓은 듯 완벽히 묶이지 않던 그의 영화가 한 인물의 이야기로 묶였다. 

<최악의 하루> 은희 / 출처 ; 다음영화

 그러나 이 역시 뜯어보면 은희와 남자친구 현오 이야기, 은희와 유부남 운철 이야기, 은희와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 이야기로 나뉠 수 있다. ‘연예인 병’에 걸린 배우 현오, 지질한 유부남 운철, 점잖은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는 한 여자가 만난 남자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른 성격의 인물들이다. 그런 인물들을 은희는 동시에, 그것도 하루에 만나고 있다. 게다가 은희는 각 인물들을 만날 때마다 다른 인물이 되는 듯 변한다. 말투, 목소리, 성격, 걸음걸이, 심지어 머리 모양까지 변화시키며 마치 다른 인물이 된 듯 그려진다. 이 인물을 보고 있자면 어떤 것이 ‘진짜’ 은희의 본모습인지 헷갈리며, 때에 따라 모습을 바꿔대는 은희가 간사해 보이기까지 한다. 은희가 보이는 모습 중 무엇이 진짜일까? 그 모습들 중 하나가 ‘진짜’ 은희일까? 그렇다면 나머지 모습은 ‘가짜’ 은희라고 할 수 있을까? 


 김종관은 인물 간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자기모순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우리는 상대방의 잘못은 잘 알아채지만 자신의 잘못은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상대방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았을 때 앞과 뒤가 다르다며 욕하지만,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은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으며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는 모순적인 사람이 아닌가?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1달을 만난 애인과 1년을 만난 애인이 다르듯, 부모님에게, 친한 친구에게, 애인에게, 공적 관계인 누군가에게 대하는 것이 같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나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것은 내가 자라온 환경, 나의 주변 사람들, 나와 관계한 타인이다. 


 나의 다른 모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도 나와 관계한 타인이며 다른 사람 앞에 다른 모습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존재 자체로 서로를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김종관의 ‘관계’이다. 그의 영화 속 자기모순은 관계 속에서 계속해서 나타난다. <최악의 하루>의 은희와 운철의 대화는 자기모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남자친구가 있는 은희는 만나는 사람 있냐는 운철의 질문에 “제가 사람 만나는 기계예요? 그런 일 있고, 어떻게 사람을 만나요?”라고 대답하며 “전 서로 솔직한 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운철은 헤어진 아내와 재결합하기로 한 이야기를 “전 행복해지지 않으려고요.”라는 어이없을 정도의 뻔뻔한 대사로 전한다.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상처받아 사랑을 못하는 인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은희, 재결합을 결정한 후에도 은희를 찾아와 사랑한다며 매달리는 운철은 그 자체로도 모순적이다. 그리고 모순적인 둘의 모습은 대사로 인해 더욱 뻔뻔하고 지질하게 비친다. 둘은 번지르르한 말로 상대방을 구슬리고 어떨 땐 본인조차 그 말에 속은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둘을 보고 있으면 이따금 그들의 진심이, 때로는 간절함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은희는 거짓을 말했지만, 동시에 항상 진심을 말했다. 다만 관계한 사람 앞에, 특히 사랑 앞에 은희가 변화했을 뿐이다.


<조금만 더 가까이> 와 <더 테이블>의 거짓과 진심
<조금만 더 가까이> 은희 / 출처 ; 다음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의 은희는 <최악의 하루>의 은희와 닮아있다. <조금만 더 가까이>의 은희는 헤어진 남자친구 현오에게 찾아가 ‘난 너 때문에 연애 불구’라며 그를 탓한다. 헤어졌음에도 현오에게 벗어나지 못한 채 그의 과거를 탓하고, 쓰레기라 욕하고, 행복하지 말라며 저주한다. 그녀의 집착은 무서울 만큼 끈질기지만, 그만큼 안쓰럽다. 그러나 그런 은희에게도 남자친구가 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현재’ 남자친구는 무엇인가? 은희는 현오를‘쓰레기’라 말하며 자신을 피해자인 척 묘사하지만, 남자친구를 두고 전 남자친구에게 매달리는 은희는 ‘쓰레기’가 아닐 수 있는가? 


 <더 테이블>의 은희를 살펴보자. <더 테이블>의 은희는 <조금만 더 가까이>와 <최악의 하루>의 은희에 비해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캐릭터이다. 그녀는 결혼 사기로 돈을 버는 여자였는데,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진짜 사랑에도 사기를 택한다. 엄마와 하객들을 섭외하고 돈을 지불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속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거짓말을 선택하는 그녀는 모순적인 두 은희와 닮아있었다. 


 김종관은 자기모순적 모습을 보이는 인물들, 특히‘은희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은희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거짓말을 했을지언정, 진심이 아닌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최악의 하루> 은희는 매 순간 진심으로 화났으며, 슬펐고, 행복했다. 은희의 “그게 진짜는 아닐 거예요.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라는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솔직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조금만 더 가까이>와 <더 테이블> 은희들의 거짓에도 마찬가지로 진심이 있었다. 감독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기모순이 ‘거짓말’일지언정 ‘진심’이 아닌 것은 아니라며 위로하는 것이다. 그는 그저 모든 사람은 자기모순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며, 그 모습조차 ‘진짜’ 자신임을 인정하길 바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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