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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두세술 Jan 22. 2018

감독 김종관

#3 호흡, 정적, 시선

 김종관은 인물 간 ‘현재’의 관계와 감정을 세밀하게 그리는 것을 중요히 여긴다. 편집을 줄이고 긴 호흡을 이용하여 인물들을 천천히, 그리고 멀리서 지켜본다. 

<조금만 더 가까이> 세연과 영수 / 출처 ; 다음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의 세연과 영수의 섹스 신에서, 그들은 아무 말과 행동이 없는 정적 속에서 40초가량 서로를 마주 보기만 한다. BGM 조차 없는 40초간의 정적 속에 관객이 보는 것은 그들의 눈빛과 작은 움직임뿐이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역시 긴 호흡과 정적으로 설렘의 감정을 전달한다. 영화에는 남자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지만, 주인공의 시선과 정적이 영화의 모든 감정을 전달한다. 김종관의 영화 속, 편집을 최소화한 긴 정적은 다른 어떤 말과 행동보다도 깊은 감정을 전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더 테이블> 역시 편집을 최소화하였다. 인물이 부재할 때만이 생략되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영화는 대화의 모든 순간을 담아냈다. 새로운 인물들이 카페에 들어와, “이제 일어나야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카메라는 인물을 놓치지 않는다. 


 다만 그런 김종관이 생략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과정’이다. 그는 인물이 왜, 어떻게 상황에 놓였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장면의 모든 순간을 담지만, 장면 이외의 모든 순간은 과감히 생략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 나아가 ‘지금 이 순간’의 관계와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이 상황에 놓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10분 전에 인물이 어떤 행동을 했던지 중요치 않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대화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진짜이며,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진심’ 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진심’이 관계이며 사랑이다.      


  그는 관객을 인물의 감정에 몰입시키는 것과, 몰입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반복한다. 특히 모순적인 인물, 또는 모순적인 상황을 그릴 때 그러하다. 카메라가 인물의 감정과 움직임을 따라 움직일 때 관객은 몰입한다. 반면 카메라가 인물들을 멀리서 지켜볼 때(뒷모습을 바라보거나 나뭇잎 뒤에서 가만히 지켜볼 때), 관객은 몰입에서 조금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게 된다. 관객은 몰입했을 때 인물의 진심을 느낄 수 있으며,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볼 때 행동의 모순을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감성과 이성의 영역을 드나들게 하는 듯하다. 관객은 인물의 진심과 행동의 모순을 동시에 바라보며, ‘진심’과 ‘거짓’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특히 사랑을 할 때 노골적으로 욕구를 드러내곤 한다. 자존심을 버리고 구차해지기도 하며, 지질하게 사랑을 구걸하기도 한다. 그러한 사랑의 영역에서 진실과 거짓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 일 때가 있다. 김종관은 감성과 이성의 영역, ‘진심’과 ‘거짓’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인물들에 연민을 가지고, 그들에게 ‘그럴 수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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