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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두세술 Mar 25. 2018

흘러가는 삶 속 고민들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출처 : 다음 영화

 이야기가 진행 되는 내내 영화는 강한 계절감을 뿜어낸다. 공기 속을 헤엄칠 수 있을 것 같은 높은 습도, 달라붙는 파리와 땀에 젖은 옷, 특히나 해를 가린 구름 탓에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듯 한 어두운 날씨는 ‘습하다’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여름의 기운을 뿜어낸다. 이치코는 날씨 탓에 든 곰팡이 때문에 한여름 스토브를 켜고, 켜낸 스토브가 아까워 빵을 굽는다. 꿉꿉한 날씨에 상쾌함이 필요할 땐 식혜를 만들고 친구를 초대한다. 나무가 물드는 가을엔 밤 조림을 하고, 고구마는 날이 추워지기 전에 삶아서 말려둔다. 계절이 변함에 따라 그에 맞는 음식을 하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일상. 이치코의 일상은, 그리고 어쩌면 그녀의 일생은 그저 그렇게 계절의 변화에 따른 행동이 모여 완성될 것이다. 그녀는 자연의 이치에 몸을 맡기고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배워나간다.     


 처음엔 이치코의 모습을 보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며 인생을 마주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저 계절에 따라 해야할 일을 하는 이치코일지라도,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이 있다. 이치코는 죽은(죽인) 모기를 보며 ‘나는 도망쳐 왔다.’고 말한다. 도망을 끝내야하지 않을까, 도시로 올라가야하지 않을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와 같은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들. 그러한 생각들이 그녀의 흘러가는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이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있지만,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흘러가는 삶 속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기때문에.


 열정, 야망, 목표, 성취. 이러한 것들이 마음 속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오히려 그것들을 잃어갔다. 절실한 열정을 찾으려니, 작은 열정이 무시되고 있었다. 모든 고민을 벗어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절과 함께 변화하며 살아가는 그녀조차 흘러가는 대로 인생을 내버려두지 않을 텐데, 나라고 어찌 인생을 그저 내버려둘 수가 있을까. 그보다 이제는 고민을 안는 법을 배우고 싶다. 고민이 있음에 괴로워하기보다 그 고민 속에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싶다.    

 

 영화는 이치코의 자전거 타는 모습으로 시작해, 자전거 타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오르막길에선 엉덩이를 들어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다가, 내리막길에선 안장에 엉덩이를 붙인 채 페달에 발을 얹고 편안히 내려간다. 힘을 쓰면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오르는 것을 목표로 계속해서 힘을 쏟고 나면, 더 이상 자전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힘이 풀려버릴지 모른다. 편안히 쉬면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이 다리를 쉬며 삶을 마주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온갖 ‘-난’이 붙은 어려운 사회에서 끊임없이 힘을 써 오르막길을 오르는 청춘은 언제 푸르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어쩌면 내리막길일지라도 나를 둘러싼 고민을 안을 수 있을 때, 흘러가는 삶 속에 더 나은 나를 위한 고민이 자리 잡았을 때 푸르른 청춘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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