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두세술 Apr 13. 2018

영화 같은 현실, 현실 같은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출처 : 다음 영화

 많은 영화들은 자신이 영화란 걸 감추려 노력한다. 그를 위해 장면을 부드럽게 잇고,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잊게 만들고,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로인해 관객은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조금 다르다. 인물은 카메라를 직접 바라보기도하고, 장면은 어색하게 뚝뚝 끊기기도 하며, 성희롱한 선생님의 얼굴은 찌그러진 찰흙괴물처럼 그려진다. 수남에게 잡힌 심리치료사는 말투와 표정, 행동이 너무 과장되어 영화를 넘어 연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잔혹한 장면을 그릴 땐 그 전개가 너무나 빠르고 허무해 현실성 없이 느껴진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애써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계속해서 “나는 영화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영화는 왜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    

 

 주인공 수남은 열심히 살면 열심히 살수록 망가진 삶을 살게 된다. 남편의 청력을 되찾아주려 노력하였더니 남편은 손가락을 잃었다. 9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갈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지만 꾸준히 오른 집값 덕분에 오히려 1억 4천만 원을 대출받았다. 남편의 행복을 위해 대출을 받아 집을 샀지만 남편은 자살을 하고 식물인간이 되었다. 재개발 사업을 추진시키려 발버둥 치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잔혹한 살인자가 되어갔다. 영화를 보며 계속해서 ‘그러지마’를 외치던 나를 배반하듯, 그녀는 더 쉽게 망가지고 더 쉽게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야기는 더욱 빠르고 더욱 극적으로 향했고, 그럴수록 영화는 더욱 ‘영화처럼’ 느껴졌다.     

출처 : 다음영화

 그러나 한국사회에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그저 ‘영화 같다’고 느낄 수 없다. 꾸준히 일한 것보다 더욱 꾸준히 오르는 집값, 돈을 위해 폭력도 서슴지 않는 사람, 아기를 나처럼 키우면 안 되니 집을 사야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사람, 남의 일을 정말 말 그대로 남의 일인 냥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상황을 이겨보려 열심히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더 깊숙한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 영화 같은 이 모든 일들은 결국 우리의 현실이고, 이 영화가 아무리 ‘영화인 척’해도 나는 영화를 현실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끝이 나면 그만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쯤 이 영화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그저 ‘영화처럼’ 보이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행복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현실인 척하는 영화보다 영화인 척하는 현실이 더욱 아프게 다가옴을 느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출처 : 다음 영화


매거진의 이전글 흘러가는 삶 속 고민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