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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두세술 Jun 03. 2018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

<플로리다 프로젝트>

  “넌 강한 아이야. 알고 있지?” “아니요.” 성매매를 한 헤일리에게서 딸 무니를 떼어놓으려, 그들의 집을 방문한 DCF(아동국)가 무니와 나눈 대화이다. 무니는 어른들의 무서운 호통에도 꿈쩍 않고 장난스런 웃음을 짓는 아이이지만 ‘강한 아이’가 아닌 그저 어리고 약한 아이다. 남의 자동차에 침을 뱉고, 건물을 정전시키고, 빈 집을 불태우는 등 친구들과 말썽을 일으키는 사고뭉치지만, 사랑하는 엄마와 헤어질 때 세상에서 가장 약한 아이일 뿐이다. DCF의 “넌 강한 아이야. 알고 있지?”라는 물음은, 너는 강한 아이가 되어야한다는, 엄마와 헤어지는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는 어른의 바람이고 유도의 물음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른들의 유도에 넘어가기엔, 무니는 몸으로 불안을 느낄 수 있는 아이였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바비와 무니>  출처 : 다음영화

  아무것도 모를 것만 같은 아이들이 누구보다 예민하게 불안을 감지할 때, 그리고 그 불안의 감정을 침묵으로 삼킬 때 마음 한편이 아려옴을 느꼈다. 일자리를 잃은 헤일리가 항의를 할 때, 카메라의 초점은 헤일리의 뒤에서 인형을 갖고 노는 무니에게 맞춰진다. 무니는 뒤에서 조용히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만, 아이는 화난 엄마를 슬쩍 돌아보고 눈치를 보는 등 온 신경이 엄마의 대화에 향해 있다. 또한 엄마가 부른 성매매 남성을 마주쳤을 때, 무니는 한동안 남성을 쳐다보다 빠르게 커튼을 치고 커튼을 잡은 그 손을 놓지 못한다. 디즈니 티켓을 훔친 헤일리가 도둑질을 추궁 받을 때 역시, 카메라는 방 안에서 티비를 보는 무니를 담는다. 무니는 이와 같이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는 엄마 헤일리의 뒤에서, 항상 불안한 눈빛으로 엄마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무니는 아무것도 모를 수 없는 환경에서 그 누구보다 섬세하게 불안을 감지하며 살고 있다.      

출처 : 다음영화

  영화가 진행될수록 나의 마음속에 무언가가 점점 쌓여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무니의 눈물이 터졌을 때 나 역시 쌓여만 오던 아픈 감정을 함께 터트렸다. 엄마와 헤어지는 이 장면에서 무니와 친구 젠시가 할 수 있는 것은 손을 잡고 디즈니랜드로 도망가는 것뿐이었다. 두 아이가 도망갈 때 영화의 음악과 편집은 판타지적으로 급변하는데, 이로 인해 아이들은 마치 행복과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이들은 아이들이 금세 어른들에게 잡히고 말 것이란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아이들의 도망이 희망을 향한 길이 아니란 것 역시 알고 있다.      

<마지막 장면 잰시를 찾아온 무니>  출처 : 다음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어른들의 참혹한 세계를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로 인해 관객은 어른들의 비참한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이 세계 속 사람들의 아픔에 그저 절실한 공감을 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판타지적 장면, 감정적 공감을 하며 영화를 바라보던 관객은 갑작스레 눈물을 멈추고, 그들이 처한 참혹한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행복한 디즈니월드와 그 건너편 '매직캐슬'의 사람들. 이 모순된 세계를 '아무것도 모를 것만 같은'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영화는 더욱 솔직하고 더욱 참혹해졌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출처 : 다음영화

  과연 무니는 장난스런 그 웃음을 다시 지을 수 있을까. 친구들과 짖궂은 사고를 치는 사고뭉치 아이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난 후에도 아려오는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던, <플로리다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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