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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두세술 May 13. 2018

아픔을 안고 함께 산다는 것

<너를 보내는 숲>

  마치코와 시게키는 인생에서 큰 상실을 겪은 인물들이다. 마치코는 계곡에서 어린 아들을 잃었으며, 시게키는 33년 전 아내를 잃었다. 두 인물은 삶의 순간순간을 상실의 기억과 함께 살아나간다. 끊임없이 아내 마꼬 이야기를 하고 마꼬의 환영을 보는 시게키는 물론, 마치코 역시 마찬가지다. 아들을 잃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촛불을 켜고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남편과 대화하며, 계곡을 바라보며, 그리고 가끔씩 텅 빈 눈동자를 하며 그 기억 속에 살고 있다.                                                                

<마치코>   출처 : 다음영화

  ‘내가 극복 할 수 있을까요?’란 마치코의 질문에 그녀의 동료 와카코는 ‘정해진 규칙은 없잖아요. 때가 되면 극복할 거예요’라고 답한다. 마치코는 감사하다고 답했지만, 그녀는 그 말에 위로받을 수 있었을까. 당신도 고통스러운 일이 있냐는 마치코의 질문에 와카코는 골똘히 생각을 하다, 나도 물론 가끔은 고통스럽다고 답한다. 고통의 무게야 함부로 비교할 수 없다지만, 나는 여기서 둘 사이의 고통의 무게 차이가 느껴졌다. 마치코가 겪은 아픔은 ‘때가 되면 할 수 있는 극복’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극복’이라기보다 ‘아픔을 안고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같은 아픔을 지닌 시게키와 그렇게 아픔을 안고 함께 사는 법을 배워나간다.    

<장난을 치는 시게키와 마치코 >    출처 : 다음영화

  영화를 보고 있자면, 마치코는 시게키의 마꼬가 되어주고 시게키는 마치코의 아이가 되어준다. 특히나 아이같이 도망 다니며 장난을 치는 시게키와 어린아이를 놀아주듯 그 장난에 맞춰주는 마치코의 모습을 보면 그러하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이 가장 진실한 공감을 해줄 수 있듯, 그들은 진실한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나간다.

                                                                            

<함께 숲을 오르는 둘의 모습>   출처 : 다음영화

  시게키는 정작 자신은 마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마치코에겐 ‘강물은 계속 흘러가지,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아, 절대로.’라는 말을 한다. 마치코는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마꼬의 무덤을 찾아 시게키와 함께 걸어 나간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아도, 자신이 지금 숲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몰라도, 숲에서 안전히 나갈 수 있을 거라 확신하지 못해도 그녀는 시게키의 걸음을 막지 않는다. 둘은 함께였기에 숲을 걸을 수 있었고, 함께였기에 마꼬와 아들을 보내줄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 그들을 따라 끊임없이 흔들리던 카메라는 둘의 모습에서 마치코의 손 끝으로, 마치코의 손 끝에서 숲 속 어딘가를 향해 나아간다. 마치코와 시게키가 함께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들을 카메라 역시 함께 떠나 보내주는 것이다. 그 장면에서, 그들이 함께였기에 다행이었으며 그들이 아픔을 안아도 살아나갈 수 있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마치코와 시게키가 아픔을 완전히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서로의 곁에 함께 남아 살아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 장면>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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