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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두세술 Jun 05. 2018

트루먼과 말론을 중심으로 한 <트루먼쇼>의 가스라이팅

#1 속는 트루먼은 그럼에도 트루먼이었다.

“너는 왜 이렇게 예민해?”라는 말은 때로 무서운 문장이 된다. 이 말은 누군가를 이상하고 유별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말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람은 ‘내가 예민한 건가?’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차츰 본인의 감정과 판단을 의심하게 된다. 교묘한 행동을 통해 타인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이다. 

출처 : 다음영화

  피터 위어의 <트루먼쇼>(1998)는 TV 프로그램 ‘트루먼쇼’를 소개하며 시작된다. 연출자와 연기자, 그리고 트루먼이 교차하며 나오는 이 장면은 그들의 내면과 정체성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알리는 장면이다. 연출자와 연기자들은 트루먼쇼의 진실성과 숭고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트루먼은 그런 이들에게 답하듯 “자네는 미쳤어.”, “내가 먼저 죽거든 내 시체를 먹고 힘을 내.”와 같은 말을 한다. 자신의 행동을 숭고하게 포장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말을 부정하듯 혼잣말하는 트루먼. 이들이 교차로 나오는 모습은 서로 대비되며 트루먼쇼의 모순성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장면과 함께 나오는 BGM 역시 참으로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데, 이 숭고한 음악이 그들의 모순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트루먼의 엄마 役과 아내 役 메릴> 출처 : 다음영화

  <트루먼쇼>에서 가스라이팅 당하는 대표적 인물은 단연 트루먼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조작된 세계 속에 살게 된 트루먼은 모험을 꿈꾼다. 그러나 그가 떠나고 싶다고 말할 때면, 아내 메릴은 ‘어린애 같은 소리 하지 말라’며 트루먼을 철없는 어른으로 취급한다. 친구 말론 역시 ‘너의 사무직이 부럽다’며 트루먼이 떠나면 잃게 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심는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봤단 트루먼에게 ‘옛일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교묘한 말을 통해, 그의 죄책감을 다시금 일깨운다. 이와 같이 트루먼쇼의 인물들은 그와 친밀하면 친밀할수록 교묘하고 잔인하게 그의 정신을 지배한다.

<가스라이팅 하는 미디어> 출처 : 트루먼쇼

  트루먼의 정신을 지배하려는 것은 인물뿐만이 아니다. 신문, 라디오, TV 등 그의 주변에 존재하는 많은 미디어 역시 그를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 트루먼이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를 마주치자, 다음날 신문은 부랑자를 단속했다는 기사를 싣는다. 트루먼이 마을을 떠나려 하자 TV쇼는 집을 떠나 후회하는 고전을 소개하고, 여행사는 여행자를 경고하는 포스터를 벽면에 붙인다. 이러한 상황은 트루먼쇼의 시청자 또는 영화 <트루먼쇼>의 관객 입장에서, 웃음이 날 정도로 너무도 뻔하고 허술한 작전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같이 너무도 허술한 일들이 누군가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든다면, 이것은 그저 허술하다며 웃어넘길 수 없을 것이다. 제3자의 입장에선 너무도 엉성하지만, 이들은 트루먼의 자아를 지배할 정도로 폭력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잡지를 사는 트루먼> 출처 : 다음영화

  하지만, 그럼에도 트루먼은 잡지를 사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자신에게 유일한 진실을 말해주었던, 동시에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며 끌려간 실비아를 결코 놓지 않는다. 실비아를 끌고 간 사람이 ‘또 저 지경이 됐다. 처음이 아니다.’라고 말했음에도, 그는 매일 잡지를 사서 실비아의 얼굴을 만들고 그녀를 찾는다. 그렇기에 매일 아침 그가 사는 잡지는 수많은 가스라이팅 속에서 그가 찾는 유일한 진실이며, 자신을 찾아 나서는 첫 발걸음이다. 트루먼은 잡지를 사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에, 실비아와 피지를 포기하지 않고 믿을 수 있었고 마침내 “Who am I?”라는 질문을 할 수 있었다. 그는 평생을 조작된 세계 속에 속으며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트루먼은 ‘트루먼’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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