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속이는 말론은 과연 속지 않았을까?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트루먼쇼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TV프로그램 트루먼쇼의 크레딧을 영화의 크레딧처럼 보이게 한다. 관객을 영화의 관객이자 트루먼쇼의 시청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관객인 우리 역시, 자칫 정신 차리지 않으면 트루먼쇼의 ‘숭고함’에 가스라이팅 당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이는 트루먼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 관객뿐만 아니라 영화 속 또 다른 인물들 역시 가스라이팅 당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건 진짜 인생이에요. 약간 통제할 뿐이죠.”라는 말론의 인터뷰를 트루먼은 “너희를 사랑해. 너희 모두 사랑한다.”라는 말로 이어받는다.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한 채 ‘진실’을 말하는 말론과 거울을 보며 ‘사랑’을 말하는 트루먼. 그들의 진정한 ‘진짜’는 무엇일까. 꾸며진 인생이지만 진정한 사랑을 한 트루먼과 대부분의 인생을 연기로 살아온 말론. 말론의 사랑은, 말론의 인생은 무엇인가. 설정된 삶을 살아온 말론은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가.
말론은 7살 때부터 트루먼과 떼어놓을 수 없는 친구였다. 즉, 말론은 자아정체성이 확립되기 전인 어린 시절부터 TV쇼에서 연기를 하며 살아왔으며, 연출자 크리스토퍼의 명령을 들어왔다. 때문에 말론은 크리스토퍼가 조종하기 가장 쉬운 인물이자, 평생 친구를 속이고 감정을 속이는 삶을 사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말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끊어진 다리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다. 말론은 카메라를 바라보고 “이게 맥주지.”라며 등장하는데, 그는 항상 자신의 임무인 맥주 광고를 완수한 후에야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이 ‘자유로움’ 역시 그 스스로의 삶을 사는 자유가 아닌, 크리스토퍼의 기획 안에서의 작은 자유이다.
영화 속 다리를 통해 말론과 트루먼을 살펴보자. 우선 트루먼에게 다리란, 바다가 무서워 몇 걸음을 내딛다 돌아온 길이자, 말론의 가스라이팅에 모험을 제지당하는 장소이며, 눈을 감고서라도 결국엔 넘게 되는 장애물이다. 그가 말론과 끊어진 다리에서 두 번이나 대화를 나누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말론은 끊어진 다리처럼 트루먼이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그의 길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말론은 트루먼과 함께 그 끊어진 길 위에서 서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트루먼을 속인다는 생각에 자신이 속아왔음을 깨닫지 못한다. 끊어진 다리에 트루먼과 말론이 함께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말론은 본인이 다리를 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그저 끊어진 다리에 트루먼과 함께 앉아있는 인물이다.
끊어진 다리에 앉아 이야기할 때 트루먼은 말론의 우정 어린 말에 감동받아 눈물을 흘린다. 반면 말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크리스토퍼의 대리인으로서 그의 말을 대신 내뱉을 뿐이다. 이는 맥주에 대한 둘의 태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다리에서 “맥주 한 잔 줄까?”라고 묻는 말론에게 트루먼은 싫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말론은 맥주가 먹고 싶지 않을 때, 싫다고 답할 수 있을까. 싫다고 답한 적이 있을까. 트루먼에게는 ‘잡지’와 ‘피지’가 있었지만, 그에겐 오직 ‘맥주’와 ‘크리스토퍼의 명령’이 있을 뿐이었다.
트루먼은 “Who am I?”를 묻고, 스스로 나가는 문을 찾아 진실한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그렇다면 말론은 “Who am I?”란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질문을 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는 어린 시절부터 크리스토퍼에게 조종당해왔으며, 거짓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 말론이 말한 트루먼쇼의 ‘숭고함’은 어쩌면 그의 자기 포장이 아니라 그가 진심으로 믿어온 그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는 한 몸 같았던 검은색 맥주 캔을 버리고, 크리스토퍼의 명령이 들려오는 이어마이크를 벗어던질 수 있을까? 그것들을 벗어던진 후에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설 수 있을까? 그는 그저 진실과 진심이 무엇인지 모른 채, 가스라이팅 당하며 살아온 또 다른 ‘트루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