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으로 가고자 함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듯하다. 나이가 들수록 그 용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된 값을 요구한다. 한국에서의 경력, 익숙함을 다 버리고 20대 초반의 열정과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다 보면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배로 커지는 것 같다. 물론 같은 분야로써 일을 하더라도 타 지역으로 가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듯하겠지만 타 지역으로 가는 것보다 타지,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쓰는 나라로 가는 건 더 큰 용기가 필요한 듯하다. 왜냐하면 타 지역으로 갈 때는 떨림이 전혀 없는 상태였고, 이사 간 날도 이미 오래 산 사람처럼 시장을 누비고 다니고 긴장감 없이 다녔었다. 언어가 신경 쓰이지도 않았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아도 느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다른 나라로 가고자 하니 가기 전부터 긴장이 되고 두렵고 설레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막상 가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긴장감 하나 없이 다닐 수도 있겠지만, 가기 전인 지금은 모든 종류의 감정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듯하다. 이 감정들은 나타났다 사라지고, 괜찮다가 다시 나타나서 걱정이란 걱정은 다 불러왔다.
레터 받고 비행기를 끊으려고 했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변경 가능한지 확인을 하고 비행기를 미리 끊어두었다. 딱 이주 뒤다. 그사이에 일이 진행이 되어서 처리가 다 되면 변경 없이 끊은 날에 떠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변경을 해서 더 늦춰야겠지. 장시간 비행도 처음이고 경유도 처음이라 인터넷 리서치를 엄청했었는데 그때 절친이 나에게 말했다. "숭아, 네가 완벽주의라 그런 것 같아. 네가 아무리 리서치를 하고 완벽하게 준비해서 가더라도 막상 공항에 내리면 헤맬 거고, 또 길을 찾을 거야.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마. 사람들이 인터넷에 자세히 안 적은 이유는 다 있을 거야. 공항에 도착하고 지나쳐봐야 '아 내가 본 글이 여기 말하는 거구나' 할 테야" 맞는 말이었다. 모든 면에 완벽하길 바라는 완벽주의적인 나의 성향 때문에 더 불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영어공부도 더디게 느는 거겠지.
막상 비행기 예매를 끝나고 나니 내가 출국날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고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미 퇴사했지만 매일같이 연락 오는 회사에 답변을 다 해주어야 했으며, 잠시지만 집에서 1시간 거리인 곳에 가서 일처리를 해주었기 때문이라. 비행기를 예매하고, 인천공항까지 가는 루트를 리서치하고, 챙길 물품 중 빠진 건 없는지, 어떤 게 또 더 필요한지 하나씩 검토하고 체크했다. 필요한 서류를 발급하기 위해 학교에 전화 문의도 했고 한국폰을 살리고 갈 예정이라 통신사에도 요금제 문의를 해놓았다. 하나씩 알아보고 해결하면서 나의 심장은 더 두근거리고 설레고 두려워졌다. 한국 내에 타 지방도 아닌 다른 나라를 가는 것이니까 당연한 감정들이겠지.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정하려 글을 쓰고, 빠진 게 없는지 놓치는 게 없는지 여러 번 체크를 하며 마음을 다 잡고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 영어 공부. 끝없는 영어공부야 말로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이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거니까.
남자 친구의 '닥치지 않으면 미리 걱정하지 마.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할 일도 아닌데'라는 말이 이제야 온전히 내 마음속에서 이해 가기 시작했다. 그 전엔 이성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사서 걱정하는 게 얼마나 나를 갉아먹고 있었는지 보이기 시작했고, 걱정 따위에 내 에너지와 시간을 쓰기엔 너무 아까웠다. 내가 돈이 없지 에너지와 시간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