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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공평한 의사결정

by 중소기업직장인

두번째 회사에서는 마케팅 분야에서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사실 마케팅이라는 용어는 학문적인 정의로 따지자면 아주아주 광의의 포괄적인 개념이지요. 마케팅은 기본적인 마케팅 믹스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4P, STP거쳐 홍보와 광고영역에 잠시 머물렀다가, 소비자 행동과 기업 철학을 포괄하여 기업의 영속적 이윤추구라는 존재가치까지 다루며 파생적으로 다양한 분석기법을 기반으로 한 컨설팅 영역… 네 그만하겠습니다.


사실 현재 중소기업에서 마케팅은 광고/홍보 분야에 보다 집중되어 있으며 영업과 제품/서비스기획 분야에서도 필요한, 외부와 접점이 있는 모든 업무의 중간정도 되는 곳 어디에 위치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네요. 아무래도 중소기업 마케팅 업무의 경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시키면 잔말 말고 해라 측면의 다양한 영역을 다룬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참고로 마케팅 업무를 수행하는 스스로에게 집사 또는 잡부, 올라운더 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계속 해서 말씀드리지만 업무의 영역과 수행부서가 분명하게 정의된 업무분배서(R&R)와 업무의 절차와 세부 방법이 나열된 업무매뉴얼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중소기업에서 그러한 규정서를 보유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각 부서와 개인의 업무를 구문하는 것이 모호한 것이 현실입니다.


업무의 영역이 모호하다. 이는 사실 중소기업 내부에서도 상당한 분쟁거리가 됩니다. 어떠한 업무가 진행되어야 하고 그 부분이 부서간 협업이 아닌 업무담당자 한 두 명에 의해 진행되지만 보고는 대표이사까지 들어가는 그런 업무일 경우에 업무를 누가 진행하는 가에 대한 눈치게임이 시작됩니다. 더 직접적인 예시로 '이거 궁금한데 누가 정기적으로 정리해서 보고해봐', 라던가 '야 이런 자료가 있어야 니들 업무 하는데 도움이 될 테니 누가 만들어서 공유해봐' 등등의 이야기를 대표이사가 심각하지도 급하지도 않고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고 하더라도 높은 확률로 새로운 일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말단의 업무담당자는 짜증 섞인 식은땀이 납니다.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색다른 일이 발생하는데 수행하게 되는 부서의 결정은 누가 더 논리적인 의견을 주장하는가 또는 어느 부서의 팀장이 파워가 있는가에 따라 진행되니까요.


두번째 회사에서는 언급한 케이스의 사건이 자주 발생했으며 따라서 저희 팀과 영업팀의 업무 협의가 상당히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다툼 까지는 아니었지만 회의실에 모여서 팀장끼리 이야기를 하고, 말단인 저희들은 같은 회의실의 공간속에 있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열심히 응원하는 그런 모습들이 자주 연출되곤 했습니다. 이런 식의 논쟁은 너무도 건설적이지 않고 매우 소모적이며 높은 확률로 업무의 지연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이 동일한 시간동안 야근을 하게 만들며 다수의 사람이 야근을 했으니 스트레스를 함께 풀기 위해서 소주한잔을 같이 하게 만들고, 나아가 늦은 취침과 피곤한 아침을 촉진하게 되지요.


그래도 저희 멋진 인생 선배이자 팀장급 과장님은 각 부서 별 고유 업무와 진행 현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영업팀장을 잘 설득할 수 있었고, 덕분에 업무의 분배는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고 공평하게 잘 진행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말 그대로 공평하고 유능한 상사였습니다. 어찌 보면 그 멋진 상사님은 앞서 이야기한 '편'이 아닌 그 상위의 공평한 중재자의 개념으로 위치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중소기업에서 '편'의 중요함을 앞서 이야기했지만, 그만큼 중소기업에서 중요한 존재는 공평한 중재자 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팀이니까 같은 편이 아니냐 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특정한 업무에 있어서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반적으로 공평한 의사결정을 진행하였으니 그 상황에서는 편으로 존재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 여러가지 의사결정에 직면합니다. 의사결정에 의해 업무가 진행되고 진행된 업무는 회사원의 평가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평가는 우리의 급여수준과 처우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며 우리가 다니고 있는 현재의 회사에 계속 남아있을 수 있는 동기로 작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의 공평한 의사결정은 우리가 지속적인 회사생활을 유지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회사원은 결국 연차가 쌓이고 적당히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위치가 될 수 밖에 없으니 공평한 의사결정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 공평한 의사결정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두에 간략히 언급하긴 했지만 업무분배서와 업무매뉴얼만 있다면, 그걸 근거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용이합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현실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요. 그러니 중소기업 직장인 답게 또 스스로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업무를 진행하면서 인수인계 받은 절차와 보고자, 특이사항 등을 정확하게 기록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급적이면 진행하는 모든 업무에 대해서 업무명, 업무의 절차, 업무시행 시점과 수행 시간, 보고자, 관련 문서 등을 표로 만들어 기록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이정도만 정리해 두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에 대한 파악과 분류에 있어서 남들보다 빠르게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 업무를 매번 수행했으며 익숙해져 있다면 5분정도만 정리하면 되는 어찌 보면 간단한 기준입니다.


기억하세요 아무리 간단하더라도 기준은 거의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공평한 의사결정자가 되기 위에서, 중소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기준을 정리하는 습관부터 챙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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