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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업무공유의 중요성

by 중소기업직장인

세번째 회사의 아이템은 다소 전문성을 요하는 품목이었습니다. 고객의 특성마다 맞춤제작이 필요하였고 사용시에 대량으로 소모되는 재료의 형태였습니다. 영업팀에서 고객의 요구사항을 접수한후 많은 테스트를 거쳐 공장의 연구소와 생산팀에서 제품을 만들어내어 제공하였습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영업과 생산만 있으면 어느정도 돌아가는 기업이었고, 관리적 요소만 확충되면 운영에 무리가 없는 안정적인 기업이었습니다.


제가 이 회사에 들어갈 수 있던 이유는 보다 기획 적인 측면을 강화하기 위한 대표이사님의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운영방식이 대기업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나름대로 기획과 운영의 노하우를 지닌 경력직을 뽑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느끼셨고 경제/경영적 측면의 기본 소양을 가진 적당히 눈치가 있는 사람을 뽑아서 그 회사에 맞는 경영기획분야를 키우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진짜 정말 매우 대단한 우연과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표이사님의 생각이 시작되었고 의사결정의 시기와 제가 일을 배워 나가는 시기가 적당히 맞물렸으며, 그게 지인을 통해 저에게 전달되어 보잘것없는 제 이력이 대표이사님의 마음에 들어서 선택이 되었고, 면접 역시 잘 진행되었기 때문에 입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과정을 생각하면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습니다. 그래서 중소기업에 신입이 아닌 사람이 입사하는 것은 스스로 노력에 의해서 보다 인연과 운명과 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세번째 회사에서 저는 당연히 사원이었고 바로 위에 부장님, 그 위에는 대표이사님 이었습니다. 본사 15명, 공장 25명 총 40여명이 소속된 이 회사도 다른 중소기업처럼 조직이 좀 듬성듬성 했습니다.


회사에서 그동안 운영하지 않던 분야의 채용이 이루어져서 그런 것일까요? 두번째 회사에서 정말 좋은 상사이자 인생선배를 만났지만 세번째 회사에서는 제 회사생활 중 베스트3에 들어가는 좋지 않은 상사가 있었습니다. 좋은 일은 지속적으로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습니다.


그 부장님은 성격은 조금 소심하고 차분하였습니다. 직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도 않고 사석에서 험한 말을 하는 등의 성격이 나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업무능력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 아이었으며,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높았고 대표이사님께 밉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무난한 상사였지요. 그런데 왜 저에게는 좋지 않은 상사로 기억될까요?


첫번째, 업무분야 입니다. 조직도상 제가 보고를 해야 하는 상사였지만 업무 분야가 너무 달랐습니다. 그분은 회계/재무/총무 업무를 오래동안 진행해왔습니다. 따라서 경영상의 의사결정을 위한 분석과 계획 업무는 부장님에게 생소한 분야였습니다. 저는 인사분야에서 일부 규정의 제정과 급여, 경영분석 및 중장기 계획, 목표관리 등을 진행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두번째, 가장 중요한 업무공유 입니다. 보통 대표이사를 통해 업무의 지시가 발생하면 부서장, 팀장 등은 대표이사의 의중이나 요구사항을 파악하여 업무진행의 방향과 종료 시기 등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부서에 업무를 분배하고 회의 등을 통해 구체적인 진행 절차를 결정하지요. 거의 대부분의 임원 수명업무 라고 하는 것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처리된 일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가치가 있다면 해당 부서의 고유 업무화 되어 업무매뉴얼도 생기고 부서간 업무 분배서에 등재되며 지속적으로 보고가 되어 평가를 받습니다.


제가 진행한 업무는 기본적으로 그 회사에 없던 업무이니 대표이사의 의중과 업무의 진행 방식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 당시 부장님은 그냥 저를 좀 위해주려고 했던 걸까요? 대표이사님의 지시사항을 부장님 나름대로 해석해서 저에게 전달하셨습니다. 기본적으로 성향은 착하신 분입니다. 저를 미워한다 거나 괴롭히려고 했다 거나 견제하려고 했다 거나 그런 모든 것들이 아닌 정말 그분도 모르기 때문에 이루어진 업무 공유 방식이었죠.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부장님이 모르는 분야의 업무를 저에게 공유하는데 의도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대표이사는 A를 요구했지만 부장님은 그분 나름대로의 해석을 가미하여 B를 지시하셨고 저는 시키는 대로 B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경험도 다소 부족했고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니 B의 80% 수준 정도의 업무처리를 한 것 같습니다.


스노우볼이 아주 맹렬하게 굴러 가기 시작합니다. 대표님의 요구사항이 애매모호하게 반영되어진, 완성도가 높지도 않은 무언가 미묘한 결과물이 작성되어 보고됩니다. 정말 마음이 넓고 성격이 매우 착하신 대표이사라도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며 반복될 경우 화를 안 낼 수가 없습니다. 내가 시킨 것과 결과가 다르다, 이상하다, 다시 해와 라는 지시가 있지만 또 부장님의 해석이 들어가고, 한번에 끝날 수 있는 일을 두 번, 세 번해야 합니다. 대표이사님은 답답하시겠죠. 그렇게 굴러 커질 대로 커진 오해는 결국 제 업무적 스킬과 이해도가 부족하여 그런 상황이 발생되었다는 결론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던 것이죠.


천만 다행으로 눈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시절 야근이 매우 잦았던 중소기업문화 덕분에 어찌어찌 대표이사님과 단둘이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고 소주 한두잔이 들어가고 조금 온화하게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업무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표이사님은 자신이 의도한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진행하는것에서 처음 놀라셨고, 제가 지시 받은 것이 자신이 지시한것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에 또 놀라셨습니다. 결국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업무가 처리되고 있음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날 이후 대표이사님은 부장님과의 단독 면담이 아닌 부서장 회의를 통해 업무지시를 진행하셨고 저는 매번 회의체 운영 및 회의록 작성 이라는 명목 하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보다 명확하게 대표이사 지시 업무의 방향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업무 능률도 완성도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것만 보면 참 다행스럽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이세상의 모든 현상에는 반대급부 라는 것이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이로 인해 또다른 스노우볼이 굴러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저는 그 당시 눈치채지 못했고 그 스노우볼은 또다른 다소 큰 사건의 계기가 되긴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업에서 회사원이 시간을 사용해서 이룩하는 거의 대부분의 것은 당연히 업무의 처리입니다. 업무를 직접적으로 진행하기에 앞서 업무에 대한 공유 및 소통은 매우 아주 정말 몇 번을 강조하여도 부족함이 없이 중요합니다. 이부분이 어긋나면 업무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발생시키며 우리의 노력과 시간은 그냥 낭비가 되었을 뿐이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는 원하지 않는 월급 도둑놈의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중소기업에서 일 한지 얼마 안된 직원 이어도, 조금 오래되어 고참 축에 속하며 업무지시를 해야 하는 직원 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업무를 수행하느냐 만큼 명확한 업무의 개념과 방법을 타인에게 공유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이 함께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업무의 정확하고 명확한 공유'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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