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9. 업무를 잘해도 문제

by 중소기업직장인

세번째 회사의 막바지는 전혀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에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세번째 회사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대표이사님의 수명업무를 주로 진행하였고, 그런 업무들이 반복되고 정착 되면서 제 업무의 거의 대부분이 임원의 의사결정을 위한 조사, 분석 업무가 되었습니다. 업무지시자가 원하는 업무기한을 충실히 지키고 나아가 회사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적당한 수준의 업무를 진행했다고 생각 합니다. 나름대로 업무 적성도 맞았으며 3년만에 대리로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당시에 일은 정말 재미있고 보람있었으며, 저 역시 매우 의욕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문제는, 세상은 때론 이런 모습들을 좋게만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동일할 수는 없지요. 그리고 자칫 하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말 한마디가 전혀 필요 없는 의심이나 다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시절입니다. 각 부서에게 자료를 요청해서 취합하며 대표이사님께 직접 보고하고 임원들을 대면하면서 의사결정사항을 정리하여 공유했기 때문일까요?


술자리에서 ‘너 아주 잘나가?’정도로 농담을 던지던 사람들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배척 받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너무 사소했고 표시가 나지 않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이도 자신보다 어린데, 이제 막 대리가 되었을 뿐인데, 자기보다 학벌도 좋지 않고 경력도 낮은데 등의 이야기가 점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조직관리가 잘 되는 회사에서는 선배나 팀장이 나서서 오해를 풀어주거나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에게 따끔하게 이야기해서 회사내에서의 사람끼리 반목하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게 대응합니다. 하지만 중소기업 입니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체계나 관리자 교육, 규정이 제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희 팀장님은 업무분야가 많이 달랐고 리더십이나 카리스마가 있으신 분은 아니었습니다.


회사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제 뒷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근데 그 사람이 평소에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며, 업무적으로 협조도 잘 이루어지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당연히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무언가 오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는 증거가 나오고, 그로 인해 다른 여러 사람들이 저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처 방안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크게 실망을 한 나머지 별다른 대응 없이 그저 조용히 업무에 더 집중했습니다. 사회생활의 경험이 짧았던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딱히 대응할 방법도 모르겠고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기에도 이 상황이 말도 안되고 또한, 진실은 밝혀지게 된다 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조금은 스스로 안일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들으면서 여기서 계속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이제 나도 대리로 승진했고 경력도 쌓였는데 더 좋은 회사로 이직 못하겠어? 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찌 보면 쓸 없는 자존심이었을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 나이의 패기, 좋게 말하면 열려 있는 기회로의 도전으로 포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저의 세번째 회사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해서 아쉽다는 대표이사님의 말을 뒤로하고 저는 다시 이직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자진 퇴사로 인해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는 말 그대로 자발적인 백수가 된 것이지요. 적어도 이직을 확정하고 나왔어야 하는데 멍청하게도 저는 제 인생이 더 잘될 것이라는 자신에 차 있었습니다.


이때 회사생활에 있어 지금도 꾸준히 유지되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회사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업무만 잘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 혼자 잘하는 것 역시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조직 관리가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는 회사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기업문화가 정립되어있는 회사라면 더할나위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업무를 잘 처리하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중요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직원들을 관리해줄 수 있는 체계가 있는 회사, 적어도 직원들을 보살펴줄 수 있는 상사가 있는 회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가지더, 나름의 능력으로 업무를 잘 처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팀과 동료와 함께 하는 성과를 창출하였을 때 가장 화려해 질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주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38. 혼자만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