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익숙함의 상실
회사생활 4년만의 휴식, 망한 회사와 인턴도 생각하면 거의 5년 동안 매일 회사에 묶여 생활하던 사람이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면 지나칠정도로 자유롭고 여유로워집니다.
퇴사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침 6시에 울리던 알람을 꺼버린 일입니다. 그리고 일단 쉬기로 마음먹었으니 평소에 못하던 것을 해보고 멋지게 시간을 보낼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지방에 있는 친구에게 방문하여 여행도 즐기고 평소에 소홀히 했던 영화도 실컷 봤습니다. 출근시간이 지난 후 카페에 방문해서 커피한잔을 마시고 서점에 들러 책을 보는 등의 평소에 멋지다고 생각하는 생활도 즐겼습니다. 하지만 여유롭고 멋지고 생산적인 생활을 즐기는 것은 고작 2주 정도 지속되었을 뿐입니다.
그 이후는 아무 대책 없이 밤새 술을 마시거나 게임만 하는 등 계획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현실도피 생활이 찾아왔습니다. 다음날의 고정된 일정이 없으니 늦잠은 생활화되었고 그저 몸과 마음이 하고싶은 대로 편하고 기분 좋은 일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재취업을 위해 채용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하고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직을 위해 채용공고를 확인하고 이력서를 등록하는 일련의 과정이 매일 반복된다면 정작 시간소요가 매우 짧다는걸 깨닫게 됩니다.
5년 가까운 시간 동안의 메어 있던 장소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급급하여 제 자신에게 무의미한 해방감을 주게되었고 그로인해 오히려 무기력해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업무적으로 받았던 스트레스는 없어졌지만 익숙함의 상실이라는 것은 또 다른 유형의 더 큰 스트레스를 만들었으며 자연스럽게 불안감도 찾아왔죠.
주변 사람들의 경우, 처음에는 자유로운 백수의 시간을 부러워하고 같이 어울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생활 공간과 패턴이 다른 우리들은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또래와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일반적이지 않은, 낯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현실도피는 정신적인 불안감만 주는 것은 절대 아니었지요. 당장의 수익은 없으니 퇴직금과 저금했던 돈을 사용해야 했고 이는 경제적인 불안감도 가져왔습니다. 이런 불안감들이 가중되고 쌓이기 시작할 무렵, 더욱 열심히 재취업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간의 경력을 열심히 정리하고 포장해서 이력서를 작성하고 회사에서의 경험을 살려 자기소개서도 차별성 있게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기존에 다니던 회사는 나름대로 대기업 자회사로 분류되었고 하던 업무 역시 회사에 꼭 필요한 업무이기 때문에 재 취업은 잘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완전한 착각이었지요.
사회는 가혹합니다. 일단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또한 취업시장에는 노동력의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많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전문적인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경력이 매력적이지도 않았으며 특히 하던 일은 회사에서 인력을 많이 뽑지 않는 업무 분야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과연 그때 당시에 모르고 퇴사를 결심한 것일까요? 저 역시 분명히 그런 부분들을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이때 정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기분에 따라 말그대로 대책 없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인드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요.
너무나 미련한 젊은 시절이었습니다.
사회에서 내가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대한 결과는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법칙이 존재합니다.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결론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후회가 따라옵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대로 너무 잘 진행되더라도 마음을 놓는 순간 꼭 무언가 문제가 생기고 태클이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반드시 발생하는 우리 삶의 법칙입니다.무엇을 결정하고 행동함에 있어 완전한 것은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놓아서도 안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회생활속에서 반복되는 결정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특히 익숙함의 상실이 발생하는 결정은 많은 고민과 계획, 대안 등을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계획 없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 반드시 후회합니다. 그리고 계획이 있더라도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것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