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프카 Jul 22. 2019

다음 봄에는 시합 한번 나가야제?

세 번째 복싱 이야기


링에 처음 오르다


벌써 3개월째다. 여러 상황으로 매일 참석은 어려웠지만, 한번 한 번에 혼신을 다했다. 분주히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한 동작을 만 번은 연습해야 된다는 관장님 말씀을 따랐다.  힘으로만 찌르던 주먹은 조금씩 모양새를 잡아갔다. 샌드백에서 울리는 소리도 경쾌했다. 조용히 내 모습을 지켜보시던 관장님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말하셨다. "스파링 하자."


네? 스파링이라뇨. 저는 아직 부족합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관장님이라니. 꿈일 거라 믿었지만, 어느새 나는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첫 스파링 3분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신비로웠다. 3분이라는 시간이 참, 길었다. 첫 스파링인 만큼 관장님은 가끔 꿀밤 때리듯 한 대씩 가볍게 치셨다. 나는 배웠던 대로 원투를 날렸다. 얼굴을 노려!라고 소리치셨지만, 내 팔은 도통 관장님의 그곳에 닿지 않았다. 단단한 커버는 넘볼 수 없는 벽 같았다. 2분이 넘어가자, 슬로비디오처럼 뻗는 내 주먹을 보며 깜짝 놀랐다. 겨우 버텼다. 관장님은 "첫 스파링인데, 잘 버텼다."라고 격려해주셨다.


최근 '훅'이라는 공격 기술을 배웠다. 훅은 상대방의 공격을 역이용하여 주먹을 안으로 굽히면서 치는 기술이다. 레프트 훅은 왼쪽 다리, 라이트 훅은 오른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쳐야 한다. 잽과 스트레이트, 양쪽 훅 같이 배우니까 공격 변화가 한층 다양해짐을 느꼈다. 관장님께 듣고 정리한 훅 포인트를 정리해야겠다. 이곳은 나의 기록 공간이니까.


첫째. 다리의 기본 스탠스를 잡아 준다.
둘째. 가드를 올린 후 오른손 팔꿈치를 어깨 높이까지 올린다.
셋째. 허리 회전하며 손을 휘두른다. 오른쪽 팔꿈치 안쪽 각도 90도 이상 벌어지면 X
넷째. 왼쪽 앞발에 체중이 실리며, 오른발, 허리, 어깨가 동시 회전하며 오른손을 휘두른다.
다섯째. 동작이 끝난 뒤, 다시 왼쪽 손 팔꿈치를 올리며 반대쪽으로 훅 동작을 실행한다.



다음 봄에는 시합 나가야제?


"잘.. 잘못 들었습니다?" 내년에 실시하는 복싱 생활체육대회에 나가보라는 권유였다. 그냥, 따스한 격려라고 생각하자. 기분 좋으라고, 더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주신 걸 거야. 하지만 그 이후로도 수차례 말씀하시는 걸 보니 진심이신 듯했다. 물론 이기면 기분은 좋겠지만, 이런 대회 자체를 나가는 게 인생에 있어서 큰 경험이자 재산이 될 거다. 설득되는 나를 보며 두려웠다. 스피노자의 두려움에 대한 정의가 떠올랐다.


두려움이란 우리가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는 미래 또는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슬픔이다. <강신주의 감정 수업, p. 349>


두려움은 비연속적이다. 순간이다. 나는 무엇을 주저하는가. 어떤 결과를 예상하는가. 내게 도전이란 무엇인가.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다. 다만, 과거를 떠올려봤다.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면서 두렵지 않은 도전이 있었는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비틀거리고 휘청거렸던 때가 더 많았다. 언제나, 그로기 상태였다. 하지만, 뒷걸음질 치진 않았다. 복싱을 하면서 새삼 많은 걸 느낀다. 확실한 건,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자존감도 높아지고, 하는 업무나 여러 상황에 있어서도 대처하는 데 조금 더 대담해졌다. 여기까진 좋은데. 시합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 내가 복싱을 시작한 이유

 주먹을 쥐고 달리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먹을 쥐고, 달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